[여의춘추-박병권] 검찰을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아나

입력 2013-07-09 18:00


“검찰에 기대 이득을 챙기려는 얄팍한 계산으로는 큰 정치 절대 못한다”

검사라는 직업이 생긴 배경을 고찰해보면 늘 국민보다는 권력자를 위한 것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4세기 프랑스 왕정 시절 왕의 대관(代官)제도에 기원을 둔 검사는 처음에는 왕의 사익보호가 주 임무였다. 즉, 왕권을 수호하는 첨병 역할을 했다. 왕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의 지대를 걷고, 농노를 관리하는 등의 일을 한 것이다. 그러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겪은 뒤 우여곡절 끝에 지금과 비슷한 일을 했다.

따지고 보면 범죄자를 기소하고 처벌하는 검사 본연의 임무도 사실은 국가형벌권의 구체적인 행사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왕이 대통령이나 총리로 이름만 바뀐 지금도 그 시절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검사라는 직업 자체가 권력자의 편이라는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말처럼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검찰의 속성이 권력 지향이란 사실을 모를 까닭이 없는 정치권이 이상하게도 틈만 생기면 이들에 기대려는 모습은 참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하다못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나야 한다는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왜 틈만 나면 검찰에 기대려는지 정말 모르겠다. 넘치는 정의감에 입각해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하게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 말을 곧이들을 국민이 어디 있을까. 어떻게든지 검찰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여 이득을 보려는 얄팍한 계산이 숨어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공방도 여야가 상대를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데서 비롯됐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장이 상임위를 열지 않는다며 새누리당 소속 정보위원장을 고발하겠다고 밝힌 것이 단초였다. 여기에 더해 야당 정보위 간사는 정보위원장이 자신에게 뇌물을 공여했다면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정보위원장은 무고죄로 고발하겠다고 맞섰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촉발된 여야 공방이 맞고발 사태를 가져온 것이다.

실제로 국회 정보위원장은 법사위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등 여야간 고소고발전이 행동으로 옮겨졌다. 입만 열만 민생국회니 선진국회니 떠들어대면서 행동은 유치원생 같은 정치인들의 모습을 이번에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지만 품격은 더욱 떨어졌다. 국회선진화법은 도대체 왜 만들었으며 정치쇄신특별위원회는 무엇 때문에 구성했는지 모르겠다.

이뿐 아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상대당을 수사하라고 난리다. 도대체 검찰이 하수종말처리장이라도 되나. 의혹이 있다고 모든 것을 수사한다면 수사권 남용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무조건 고소, 고발, 수사의뢰를 외치고 있다. 수사는 범죄의 의심이 있을 때 착수한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가지고 사태를 예리하게 파악한 결과 범죄 징후가 보일 때 수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정치적 공방은 의회 안에서 끝내야 한다. 더욱이 국회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것이 살인죄처럼 의회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에 한해 외부의 힘이 간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요체인 삼권분립 정신에도 맞다. 아무 증거도 대지 않고 심증만 제시하면서 정치 공방의 수단으로 검찰을 걸고넘어지는 것은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날이 교묘해지는 첨단범죄를 따라잡기도 바쁜데 결론이 뻔하거나 결론이 없는 사건을 정치권이 자꾸 떠넘기니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속 터놓고 말하지는 못하지만 내심 정치인을 욕하는 검사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 정치권에는 나라와 민족을 향한 뜨거운 애정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져 가고 있다. 저마다 대권과 정권쟁취를 염두에 둔 얄팍한 계산에 밝기만 하지 진정성이나 치열함은 찾을 길이 없다는 말이다. 하물며 검찰에 기대 이득을 보려는 비겁한 정치인이 사라지지 않는 한 큰 정치는 기대하기가 점점 어려울 것이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