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정민] 아랍의 봄, 과실 없이 겨울로

입력 2013-07-08 19:00 수정 2013-07-08 19:22


꽃도 피우지 못했다. 과실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겨울을 맞고 있다. ‘아랍의 봄’ 모종의 현재 상태다. 오랜 겨울을 지내고 겨우 싹을 틔웠지만 이식되자마자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이집트의 시민혁명은 다년생이 아니었다. 혁명을 일으킨 시민이 추대한 새로운 지도자는 거의 정확히 1년 만에 쫓겨났다. 새로운 시대의 인프라가 될 공식 헌법도 마련되지 못했다. 새 헌법에 기초한 총선을 통해 선출될 정식 의회와 국민의 대표기관이 인준할 최종 정부도 구성되지 못했다.

지난 1년간 이슬람 정권에 대한 불만이 강력히 집결된 결과다. 타마르루드(tamarrud·거부) 운동은 이슬람주의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에 반대하는 2200만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때문에 거리에서 투쟁한 시민과 세속주의 세력은 제2의 혁명 혹은 교정혁명(correctional revolution)을 통해 2011년 혁명을 완성했다고 기뻐하고 있다.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이슬람주의 정권을 몰아낸 것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방법이 적절치 못했다. 정치학적으로 보면 시민혁명이 아니라 ‘쿠데타’에 가깝다. 군부가 대통령궁에 난입해 통치자를 강제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측근들도 체포되거나 구금된 상태다. 현행 헌법의 효력이 정지되고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예정이다. 군부는 또 몇 시간 후 새로운 임시 대통령을 임명했다. 이집트의 세속주의 세력은 현재 이 군부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과거 60여년 독재를 이끌었던 주체다. 2011년 초 같은 광장에서 퇴진을 요구했던 바로 그 세력이다.

무슬림형제단 정권이 권력을 독점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법과 정치 그리고 사회를 이슬람화하려 했다. 그러나 1952년 이집트 공화정 출범 이후 최초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합법적이고 정통성을 가진 정권이었다. 소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권력을 차지한 정치집단이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앞으로 어떤 정치집단도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노선이 맞지 않으면 거리를 점령하고 물리력을 통해 끌어내려도 된다는 선례가 생긴 것이다. 앞으로 세속주의 세력이 권력을 차지할 경우 이슬람 세력이 거리를 채울 것이다. 3000만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낼 것이다. 군부가 협력하지 않을 테니 무장 이슬람 단체가 군부와 교전을 벌이고 대통령궁으로 난입할 수도 있다.

좀더 시간을 가지고 기다렸어야 했다. 다음 선거까지 말이다. 이집트의 이슬람 정권은 실패가 예정된 상황이었다. 인구 8500만명과 높은 인구증가율, 미진한 경제발전, 높은 실업률 등은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불어 성직자가 존재하는 시아파와 달리 전체 이슬람의 90%를 차지하는 수니파는 신정통치가 불가능하다. 이란처럼 대통령 혹은 행정부 위에 최고 종교 지도자가 군림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5년 기다려서 이슬람주의 정권을 투표함을 통해 몰아냈다면 이슬람 세력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중동 전반에서 설 땅을 잃어갔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이슬람 세력에게 더 강력한 이슬람 독재와 폭력적인 투쟁의 명분을 주고 말았다. 이슬람 과격 세력의 폭력적인 활동이 향후 50년 이상 장기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현재 이슬람주의 알-나흐다 정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튀니지, 이슬람 세력이 빠르게 정치화하고 있는 예멘과 리비아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더욱 혼란스러운 정치재건 과정이 예상된다. ‘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직도 대다수 아랍 국가를 통치하고 있는 권위주의 정치집단에게는 이집트의 사례가 민주화를 거부할 수 있는 ‘좋은 핑계’로 이용될 것이다. ‘아랍의 봄’ 제2라운드는 여름과 가을 없이 바로 차디찬 겨울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