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天安門사태 배후인물 지목 ‘비운의 지도자’ 후야오방 복권되나

입력 2013-07-08 18:28 수정 2013-07-08 22:06


중국에서 ‘비운의 지도자’로 꼽히는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사진) 전 총서기의 복권이 가까웠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8일 후 전 총서기가 1977년 9월과 12월 당 간부 교육기관인 중앙당교에서 각각 행했던 연설을 ‘세상을 바로잡은 역사적인 문건’이라고 평가했다. 후 전 총서기는 9월 연설에서 음모가로 유명한 캉성(康生)을 비판했고 12월 연설에서는 문화대혁명 10년을 결산했다.

인민일보는 이날 “독자들이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후 전 총서기의 연설 현장에 있었던 선바오샹(深寶祥·81) 중앙당교 교수의 문장을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면서 첫 번째 글을 게재했다.

캉성은 마오쩌둥(毛澤東)과 그의 부인 장칭(江靑)에 기대어 권력을 탐해 ‘개똥참모(狗頭軍師·구두군사)’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가 1975년 12월 사망하자 ‘영광스러운 반(反)수정주의 전사’라는 평가가 내려졌으나 1980년 10월 마침내 그의 당적이 박탈됐다.

후 전 총서기는 그의 사망 뒤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 때문에 중국에서 그동안 기피 인물로 취급됐다. 그러나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뒤 올 들어 그러한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후 전 총서기는 1977년 9월 3일 당 정풍회의 전체회의에서 이미 사망한 캉성에 대한 비판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캉성은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4인방’과 함께 무고와 날조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당시 후야오방은 중앙당교 부교장을 맡아 중앙당교를 사실상 이끌고 있었다.

특히 캉성은 시진핑 부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가 ‘류즈단 사건’으로 실각할 때도 마오쩌둥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류즈단은 산시(陝西)와 간쑤(甘肅) 일대에서 혁명을 주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시중쉰은 류즈단을 그린 소설을 발간하는 데 참여했고 그 뒤 이 때문에 ‘반당 활동’을 한 것으로 지목돼 숙청됐다.

앞서 중앙당교 간행물 발행사는 지난 5월 10일 후야오방의 ‘실천이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다’라는 문장 발표(1978년) 35주년을 기념하는 좌담회를 열고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게 한 그의 업적을 기렸다. 중국은 그 뒤 1978년 12월 열린 11기 3중전회(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공식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가을 열리는 18기 3중전회(중국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후 전 총서기가 복권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