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갈등해소 못한 밀양 송전탑 전문가협의체
입력 2013-07-08 18:26
한전은 정확한 데이터 밝혀 문제해결에 도움 줘야
경남 밀양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구성된 전문가협의체가 40일간 활동했으나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한전 추천위원들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전의 조사 결과를 그대로 인용한 것을 주민 및 야당 추천위원들이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대국적인 차원에서 국가적 이익과 피해 주민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모두 충족되는 합의가 이뤄지지 못해 아쉽다.
여름철 심각한 전력 부족 때문에 국가적 과제가 된 지 오래인 밀양 송전탑 갈등의 근본 문제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다. 특히 한전은 정확한 데이터를 공개해 주민들을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전기 부족 현상을 ‘전가의 보도’처럼 앞세우며 밀어붙이기로 작정한 듯하다. 현 사장을 제외하고는 밀양 현장을 방문한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당초 신고리∼북경남 765㎸ 송전선로는 수도권을 거쳐 개성까지 전기를 공급하는 것으로 계획돼 있어 밀양 주민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변경돼 대구 지역까지만 송전되는 것으로 바뀌어 기존의 345㎸ 송전선으로도 가능하다는 문제가 제기돼 갈등이 시작됐다. 말하자면 정부의 계획 취소와 한전과 주민들 간 기술적 논쟁이 서로에 대한 불신을 키워온 것이다.
이번 전문가협의체에서도 한전 측 추천 전문가들은 765㎸ 송전탑 건설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송전탑반대 주민대책위 측 추천위원들은 한전이 보고서를 대필까지 해줬다는 의혹을 제기해 양측의 갈등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주민대책위 추천위원들은 오히려 기존 선로를 통해서도 신고리 3·4호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밀양 말고도 송전탑 건설 사업으로 갈등을 겪는 곳이 전국에 한두 곳이 아니어서 이번 전문가협의체의 해결방식에 상당한 기대가 모아졌다는 사실이다. 모처럼 국회가 중심이 돼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오랜 기간 의견을 조율했는데도 파국으로 치달았다면 갈등을 해결할 수단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증좌 아니겠는가. 이번 전문가협의체의 파탄이 가져오는 아쉬움과 실망의 후폭풍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어쨌든 한전을 대변하는 일방적 보고서가 밀양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전문가협의체는 지금이라도 검토 의제들을 백지상태에 놓고 현장 조사와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고, 새로운 데이터와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마침 12월 가동 예정이었던 신고리 원전 3호기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등으로 계획이 불투명해져 활동 기간 연장도 고려해 볼 만하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만성적인 전력부족이 앞으로의 경제발전에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번 기회에 전력소비가 적은 산업의 진흥 방안도 범국민적으로 함께 논의됐으면 한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과다 계상됐다는 지중화 건설비용의 원 데이터 등 기초 자료를 속 시원히 공개해 양측의 공감대가 좁혀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