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직원에 뇌물 심부름… 한수원 고리본부 팀장 막가는 수뢰 수법

입력 2013-07-09 04:59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직원을 시켜 뇌물을 받는 등 협력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기소된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 허모(56) 팀장에 대해 징역 6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8일 밝혔다. 허씨는 계측제어팀장으로 근무하던 2009∼2012년 7개 협력업체로부터 뇌물 1억79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급심 판결문에 따르면 허씨는 부하 직원들을 수시로 ‘뇌물 심부름’에 동원했다. 뇌물 요구와 입금도 부하 직원들의 손을 빌렸다. 직속 부하인 이모 차장은 허씨 요구에 따라 “허 팀장의 아들이 유학을 가야 하니 도와 달라”며 협력업체로부터 2000만원을 받은 뒤 허 팀장에 건넸다. 허씨는 현금으로 받은 뇌물을 자기 은행 계좌에 입금하는 일까지 부하와 파견업체 직원에게 시켰다.



그는 협력업체들로부터 ‘돈이 필요하다’ ‘상황이 어렵다’며 수시로 돈을 빌렸다. 그러나 언제까지 갚겠다는 약속도, 이자를 얼마나 주겠다는 얘기도 없었다. 업체들은 500만∼3000만원을 현금으로 건넸다. 물론 돌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허씨는 업체 대표들에게 빌린 돈을 갚았다는 허위 영수증을 끊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해 원전 비리를 수사했던 울산지검에 따르면 한수원과 고리원자력 직원들은 협력업체의 불법 행위를 돕거나 방조한 뒤 대가로 뒷돈을 챙기는 수법을 주로 사용했다. 허 팀장의 경우 원전에 보관된 주요 부품 매뉴얼을 친분 있는 업체 대표에게 무단으로 넘겼고, 이 업체는 ‘짝퉁’ 부품을 만들어 납품했다. 허씨는 이 대가로 8000만원을 받았다.



발전소 소속 A씨는 직속부하인 K과장이 한수원에 납품하는 협력업체를 친척 명의로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장의 행위는 직무상 금지된 것이었다. 그는 과장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대신 수시로 금품을 요구해 억대의 금품을 뜯어냈다. B팀장은 협력업체가 적정가보다 2억원을 부풀린 속칭 ‘업(UP)’ 계약서로 원전계측제어시스템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며 8000만원을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발전소 어느 팀장의 통장에는 15억원 넘게 입금돼 있었다”며 “아무 죄책감 없이 돈을 받다보니 일반 봉급생활자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