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성규] 선진국형 화학물질 관리

입력 2013-07-08 18:26


현대 문명은 화학물질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화학비료 사용으로 농업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향상됐고, 의약품 발달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년 전에 비해 30세나 늘어났다. 화학물질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삶의 도구이며,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 되었다. 학자들은 화학물질을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불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화학물질이 엄청난 피해를 불러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단적인 예가 1984년 인도 보팔에서 발생한 메틸이소시아네이트(MIC) 누출사고다. 2800여명이 사망하고 20만명이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9월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사고의 경우에도 5명이 숨지고 1만2000여명이 진료를 받았으며 사고수습에 554억원이 사용되었다. 지난 4월 미국 텍사스주 비료공장 사고에서는 저장된 화학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전문성 있게 대응하지 않아 단순화재가 연쇄 폭발로 이어지면서 14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되었다. 국내외 화학사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화학물질의 특성을 반영한 체계적인 관리와 전문성 있는 사고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2000만종 이상의 화학물질을 만들었고, 매년 2000여종의 신규물질을 상업화하였다. 유통되는 화학물질의 종류와 양은 계속 늘어나는 반면 취급 시설은 노후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화학 사고를 예방하고 유사시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국회 역시 기업의 책임 강화와 화학물질을 촘촘하게 관리토록 하는 ‘화학물질관리법’을 개정해 2015년부터 시행토록 하였다.

법 개정에 따라 기업들도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모르거나 소홀히 하고 있는 허점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5일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을 수립하였다.

이번 대책에는 화학물질 안전관리를 위한 기업의 자발적인 노력과 중소영세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자발적으로 노후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를 늘리기로 하고, 안전수칙 준수를 생활화해 나가기로 했다. 독일 등 선진국처럼 업종별 전문협회에서 시설·공정에 대한 안전 표준 및 관리지침을 마련하여 업계 자율 관리의 토대로 삼겠다는 구상도 들어 있다.

정부는 자체 안전관리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안전진단 지원, 시설개선 금융 지원, 안전인력 양성 등 각종 지원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또 화학전문가 그룹과 핫라인을 구축하여 어떤 지역에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소방관 등 사고대응 인력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화학물질 사업장 인근 주민에 대한 촘촘한 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해 사업장 밖 주민에게 인적·물적 중대 피해가 없도록 이중, 삼중의 안전개념을 시설의 설계·설치에 반영했는지 확인하는 장외영향평가 제도도 도입된다.

사고원인이 인간의 실수이든 기계적 결함이든 화학 사고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들의 안전관리에 관한 실천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화학물질 안전관리 종합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산업계와 정부가 힘을 합해 나가야 한다. 이번 대책이 화학물질의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 줄 중요한 발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