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기 착륙 사고] 승무원 이윤혜씨 “비명소리 난무… 마지막 승객 대피시키고 불길 속 탈출”
입력 2013-07-09 04:58
비행 경력 18년4개월. 그의 몸이 기억하는 착륙은 ‘부드러운’ 거였는데, 이번엔 활주로에 닿기 직전 거꾸로 이륙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 이게 뭐지’ 하는 순간 “쾅” 굉음과 함께 충격이 몸을 때렸다. 좌우로 요동치며 전진하던 기체가 멈춰 서자 그는 조종실로 달려갔다. 비행기를 통제하는 기장의 생사부터 확인해야 했다.
아시아나항공 OZ 214편 이윤혜(40·여) 사무장은 6일 오전 11시27분(이하 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활주로에 충돌하던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고기 객실 승무원 중 최고참인 그가 마지막으로 비상탈출 훈련을 받은 건 5월 21일이었다.
조종실 문을 두드리니 안에서 “괜찮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는 승객들이 안정을 유지하도록 3차례 착륙 안내방송을 했다. 세 번째 방송을 마칠 무렵 기장의 “비상탈출” 지시가 떨어졌다. 이 사무장은 기장을 따라 “비상탈출”을 세 번 외치고 승객들에게 달려갔다.
비행기 우측 도어(출입문)는 충돌 때 비상탈출용 슬라이드가 기내에서 펼쳐져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신음이 난무했다. 우측 1번 도어를 담당하는 승무원은 슬라이드에 깔려 보이지 않았다. 좌측 1번 도어를 연 뒤 객실 복도를 따라 이동하며 승객들을 탈출시켰다. 조종실에 타지 않은 보조 기장이 도끼를 들고 달려와 미처 펼쳐지지 않은 슬라이드를 폈다.
2번 도어를 열고 3번 도어에 다다랐을 때, 뒤편 중국인 승객들은 사태를 잘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짐을 챙기던 이들은 이 사무장이 소리 질러 상황을 알리자 대부분 짐을 버리고 대피했다. 다리를 심하게 다친 여자 승객은 직접 부축해 슬라이드까지 안내했다.
그때 이코노미석 10열 H·J·K 좌석에서 불길이 솟았다. 우측 2번 도어에선 후배 여승무원이 부푼 슬라이드에 다리가 끼어 “살려 달라”고 소리쳤다. 슬라이드에 불이 번지면 폭발할 수 있다. 이 사무장은 부기장과 함께 기내식용 플라스틱 나이프로 슬라이드를 내리찍어 터뜨렸다. 폭발을 막은 두 사람은 여승무원을 데리고 좌측 1번 도어 슬라이드에 몸을 던졌다. 탑승자 307명 중 사망자 2명을 제외한 302명을 모두 탈출시키고 마지막으로 비행기에서 내린 건 이 세 사람이다.
7일 오후 9시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 사무장은 꼬리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인터뷰 내내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 있었다. 탈출 이후 병원에 간 것도 그가 마지막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도 부상자를 돌보느라 자신이 다친 걸 몰랐다고 한다. 이 사무장은 “막상 사고가 나니 머리가 명료해지면서 훈련한 대로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