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연변학의 선구자들’

입력 2013-07-07 19:29


“다리를 총에 맞아 붙들려간 동무는 일본 어떤 형무소로 끌려갔다고 할뿐 그 생사와 진위를 알 수 없었던 바 이번 해방을 맞이하여 일본으로부터 돌아왔다. 척각(隻脚)작가 김학철 군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소설가 김사량(1914∼1950)의 유명한 종군 수기 ‘노마만리’에 나오는 한 단락이다. 함남 원산이 고향인 김학철(1916∼2001)은 보성고보를 졸업하고 19세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다.

1941년 조선의용군 화북지대 제2지대 분대장을 맡아 하북성 호가장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왼쪽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나가사키 형무소로 이송됐다. 수감 생활 다리가 썩어 부득불 절단수술을 받고 해방 직후 맥아더사령부 명령에 의해 풀려났으니 그때부터 그는 척각(외다리)작가로 불렸다.

이후 1950년 10월 평양을 떠나 북경에 체류하다 1952년 9월 연변 조선족자치주가 성립되자 연변에 정착해 작가로 변신한다. 그가 장편 ‘해란강아 말하라’(1954)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니 현재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준비 중인 ‘김학철 문집’은 12권에 달한다. 이렇듯 김학철은 오늘날 연변학의 초석을 놓는 데 첫 자리를 차지하고도 남는다.

‘연변학의 선구자들’(소명출판)은 김학철을 비롯해 주홍성 박문일 정판룡 박진석 박창욱 방학봉 권립 강맹산 최윤갑 김남호 리상각 조성일 천수산 교수 등 연변대를 거점으로 연변학을 일궈온 14명의 생애와 업적을 집대성한 것이다.

이력을 살펴보면 1910년 출생 1명, 1920년대 출생 3명, 1930년대 출생 10명이며 한반도에서 태어난 사람이 7명, 중국 태생이 7명이다. 이 가운데 작고한 사람은 5명이고 생존해 있는 사람은 9명이다.

연변조선족 1∼2세대에 속하는 이들은 두만강 너머의 땅인 연변에서 외교관계사, 비교문화사, 문학사, 언어학 등 여러 학술 영역에서 걸출한 성과를 낸 한국학 연구의 전진기지 그 자체라 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우리의 마땅한 책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