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네덜란드 병
입력 2013-07-07 17:57
암스테르담은 항구이자 운하의 도시다. 북해와는 북해운하로, 라인강과는 암스테르담-라인 운하로 연결된다. 무역과 상업, 어업은 암스테르담의 ‘생명줄’이었다. 16세기 말 한자동맹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암스테르담은 발트해 무역과 청어 어업으로 잘 나갔다. 청어 뼈 위에 암스테르담이 세워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네덜란드는 17세기 해상무역을 장악하면서 ‘황금시대’를 맞았다. 1650년 세계의 중심은 북유럽 구석에 자리한 암스테르담이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황금시대는 고임금, 어업과 해운업의 쇠퇴, 프랑스·영국 등과의 전쟁으로 막을 내린다. 네덜란드는 1810∼1813년에 프랑스의 영토가 되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1959년 다시 기적을 손에 쥔다. 북해에서 발견된 대규모 천연가스는 황금시대를 다시 불러올 것 같았다. 하지만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너도나도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통에 당시 통화였던 굴덴화에 대한 외국수요가 폭증했다. 통화가치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수출기업의 경쟁력은 추락하고, 일자리가 사라졌다. 자원 수출은 물가와 임금을 끌어올렸다.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시스템은 되레 노동 기피현상을 불러왔다. 저성장, 고물가, 고실업으로 망가지면서 ‘네덜란드 병’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좌초 위기에 몰린 1982년 네덜란드는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바셰나르 협약을 이끌어냈다. 감세, 공무원 임금 삭감, 복지제도 개혁, 주당 근로시간 단축, 시간제 일자리 확대, 임금 인상 자제 등을 담고 있는 이 협약의 기본 정신은 고통 분담이다.
박근혜정부에서는 최근 네덜란드와 시간제 일자리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눈길을 주는 지점은 ‘성장이 고용을 이끄는 것이 아닌 고용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는 구조’다. 네덜란드처럼 무역으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가 저성장, 고령화, 산업 경쟁력 저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 고용 확대를 방아쇠 삼아 ‘소비 확대→기업 투자 활성화→기업 경쟁력 강화→국가경제 성장’이라는 선순환 고리를 가동시키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간과하는 게 있다. 네덜란드는 협약을 맺기 이전부터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정착된 나라였다.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같은 일을 한다면 근로시간에 비례하는 임금을 받았다. 반면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 경제가 처한 위기를 벗어나려면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다만 공정하고 평등한 근로보상이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