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염운옥] 어떤 귀환

입력 2013-07-07 17:56 수정 2013-07-07 15:54


지난달 29일 중국의 국보급 문화재인 원명원 쥐·토끼 머리 청동상이 중국으로 귀환했다. 이 문화재는 베이징시 동부에 위치한 청나라 왕실정원 원명원 소재 12지신 청동상 중 일부로서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때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약탈한 것이다. 이번 쥐·토끼 머리 청동상의 귀환은 개인 기증으로 이루어졌다.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매에서 쥐·토끼 머리 청동상을 각각 1400만 유로(약 200억원)에 낙찰한 프랑스 PPR그룹 회장 프랑수아 앙리 피노가 아무런 조건 없는 기증 방식으로 무상 반환한 것이다.

물론 이런 결정에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세일즈 외교가 한몫 했다. 무상 반환이 선례를 남길 것을 우려해 완강히 거부했던 프랑스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은 중국이 4월 26일 프랑스 에어버스사의 항공기 60대 구매 의향서에 사인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계약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올랑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뤄졌다.

이번에 중국으로 돌아온 쥐·토끼 머리 청동상은 개인 소장품이지만 프랑스 공공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약탈 문화재 역시 무수히 많다. 연간 관람객 880만명으로 단연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박물관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약탈 문화재로 채워져 있다.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은 동시에 문화재 약탈 전쟁이기도 했다.

1798년 7월 나폴레옹이 약탈한 예술품들이 ‘예술은 영광이 비치는 자유의 땅을 찾는다’고 쓰인 깃발을 휘날리며 29대의 전차에 실려 루브르로 입성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나폴레옹의 예술품 약탈을 뒷받침한 것은 천재의 걸작이 봉건적인 유럽 군주국 치하에서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유의 조국 프랑스’로 ‘환수’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약탈 문화재가 공공박물관 전시실을 채우고 있기는 영국도 마찬가지다. 2010년 영국박물관 관장 닐 맥그레거가 영국박물관 소장품만으로 ‘100개의 유물로 쓴 세계사’를 펴내자 ‘약탈 유물로 쓴 세계사’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로제타석과 엘진 마블처럼 반환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사례도 많다. 오스만투르크 제국 대사였던 엘진 경이 영국으로 가져온 파르테논 신전 조각 엘진 마블을 영국박물관이 사들인 것은 1816년. 엘진 마블의 전시는 당시 영국 대중에게 유럽 문화의 원류 그리스를 직접 만나는 황홀한 시각 체험이었으며, 자신이 유럽이라는 ‘감정 공동체’의 일부임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나이지리아의 베닌 브론즈(Benin Bronze)는 영국이 아프리카에서 약탈한 대표적인 문화재다. 베닌 브론즈는 15세기 베닌 왕국에서 제작된 청동 부조상으로 정교한 기법으로 조각된 예술품이자 왕조의 주요 사건을 기록한 역사책이다. 1963년 독립 후 나이지리아는 국립박물관 개관을 위해 베닌 브론즈의 반환을 호소했으나 단 한 점도 돌아오지 않았다.

2002년 ‘빅5’라 불리는 영국박물관, 루브르 박물관, 베를린 박물관,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비롯해 18개 세계 주요 박물관들은 이른바 ‘인류 보편박물관의 중요성과 가치’ 선언을 발표해 문화국제주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과거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국가들의 반환 요구가 점차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응이다. 유럽 주요 박물관이 ‘보편박물관(universal museum)’을 자칭하는 것은 낡은 유럽중심주의의 부활이다.

약탈 문화재 반환 논쟁에서 문화국제주의와 문화민족주의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에 발목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물의 ‘이주사(移住史)’를 제대로 연구하고 교육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필요하다. ‘원시예술’이라는 안이한 심미화(審美化)에 타자의 유물을 내맡겨서는 안 된다. 당장 돌려줄 수 없다면 제작 당시 원산국의 역사와 식민지배에 따른 유물의 유입 경로를 제대로 밝히고 이를 전시 텍스트에 담아내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염운옥 고려대 연구교수 (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