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반구대를 두 번 죽이려 하나
입력 2013-07-07 17:40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그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 반구대 암각화는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걸까. 정홍원 총리가 문화재청장과 울산시장 등 10년간 으르렁대던 당사자를 불러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으니 이젠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면 되나.
실제로 반구대를 둘러싼 논의는 지난달 16일 ‘키네틱(Kinetic) 댐 설치를 추진한다’는 업무협약 체결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새다. 국회에서는 지난달 말 예정된 반구대 관련 질의마저 취소했다. 합의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국회에서 따진다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 침묵의 정체는 뭔가. 키네틱 댐이라는 게 무슨 ‘구가(九家)의 서(書)’라도 되는 양 숨죽이며 바라보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아이가 섶을 지고 불구덩이로 뛰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인데도, 9월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시민단체들은 또 왜 이리 점잖나.
키네틱 댐은 가두리 양식장이다
(MB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동안 보고 들어서 하는 이야기인데, 반구대 앞에 키네틱 댐을 설치하는 것은 암각화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별스런 지식을 기반으로 아는 말이 아니다. 그냥 반구대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은 자연스레 그런 판단을 내린다. 그래도 뭔가 설명을 요구한다면? 두 가지만 들겠다.
우선 발상이 틀렸다. 영어로 ‘키네틱’이라고 쓰니 뭔가 있어 보이지만 칼더의 ‘키네틱 아트’처럼 그저 ‘움직이는 댐’이라는 뜻이다. 물이 불면 올라가고 줄면 내리는 식이다. 언론에 공개된 개념도를 보니 바위 둘레를 투명막으로 감싸고 있다. 암각화에 고래가 그려져 있다고 해도 반구대를 무슨 가두리 양식장으로 보나? 흉물도 이런 흉물이 없다.
또 다른 걱정은 애 살리려다 에미 죽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암각화를 건져내기 위해 10m 높이의 댐을 세우려면 물밑 암반에 쇠 파일을 박고 바위와 맞닿는 부분을 방수처리하는 과정을 떠올리면 머리가 하얘진다. 이때 발생하는 충격이나 진동으로 가뜩이나 연약한 바위 표면이 바스러지기라도 한다면? 참극이자 대재앙이다.
다만 조사 목적으로 물을 한 번 빼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수위를 낮춰 반구대의 본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을 보면 원형에 대한 경외심이 생겨나지 않겠나. 사연댐 수위를 낮추면 하루 3만t의 물이 줄어들어 식수난을 겪는다고 아우성치는 울산시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으리라.
울산시, 화끈하게 낙동강 받아라
그렇다고 시민들의 식수 문제가 가볍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울산시의 물 부족 논리에 늘 의구심을 품어오던 차에 뉴스1 김재식 기자가 쓴 리포트를 접하니 너무 먼 길을 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중앙정부가 사연댐 물 대신 주겠다는 낙동강 물은 수질이 나빠 울산시가 퇴짜를 놓았는데, 어차피 7년 뒤인 2020년이면 하루 7만t의 물을 낙동강에서 길어와야 한다는 게 팩트다. 지금은 죽어라 싫다 해놓고 그때 가서 손을 벌리면 국민적 반대가 있을지 모른다.
낙동강 물도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한다. 이미 2009년에 정수처리한 물을 식수로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권한다. 화끈하게 주고 화끈하게 받기를. 중앙정부가 시설을 투자해 정수기 수준의 질을 보장하면, 그리고 2020년 이후에도 낙동강 물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겠다고 약속하면 사연댐 물을 빼겠다고.
그게 진정 시민을 위하는 길 아닌가. 울산시는 ‘코아의 기적’에 상응하는 자긍심을 가질 것이고, 반구대는 태고의 상태로 돌아감으로써 스스로 행복할 것이다. 반구대 일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그 열매 또한 고스란히 지역의 몫이 된다. 울산시의 현명하고 용기 있는 선택을 기대한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