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필교] 도서전에서 들은 ‘인생수업’
입력 2013-07-07 17:40
일 년 중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짓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다. 책, 사람,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25개국 510개사가 참여했다. 각종 특별전과 북 멘토 프로그램, 책 만들기 워크숍, 세미나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는데, 그중 내 발길이 머문 곳은 저자와의 대화였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아요. 반드시 행운을 데리고 와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요. 너무 가혹한 것을 참았더니 운명이 선물을 주더라고요. 나를 강하게 만들어 준 것을 감사해요.” 그날 초대 작가는 ‘엄마와 딸’이란 책을 낸 신달자 시인.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며 시어머니와 어머니의 죽음, 본인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삶과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다시 일어선 그는 절망 속에서 깨달은 인생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세대를 초월해 공감을 이끌어낸 강연을 듣고 청중은 몇 차례 박수로 화답했다.
강연은 진행자가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인터뷰 형태로 이어졌는데, 진행자의 소개로 그가 우리나라 출판계의 시와 소설, 에세이 부문에 모두 베스트셀러를 낸 신기록을 가진 유일한 작가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는 모든 장르 중에 가장 어려운 게 시라고 했다. “50년을 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매력인가요?” 하면서 시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며 겸허한 태도를 보였다.
제일 인상 깊었던 내용은 가정경제가 어려워져 돈을 빌려야 할 형편에 놓였을 때, 아이들이 많이 아파도 팔지 않았던 돌 반지 일곱 개를 팔아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들 반대하는 그 시점에 공부가 자신을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는 확신 하나로 말이다. 그는 사십에 공부를 시작해 오십에 교수가 되었다.
시인은 살아가는 데 힘을 실어준 가장 큰 스승이 어머니라고 했다. 딸로 70년, 엄마로 45년을 살아온 그는 한 여자가 딸에서 엄마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 주었다. ‘엄마와 딸’ 이야기는 세상 모든 여자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인고의 세월 속에서 탁월한 감수성으로 건져 올린 인생수업을 듣고 있으니 삶의 험난한 고비를 넘어온 여성의 포용력이 느껴졌다. 그의 마지막 멘트가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실패는 또 다른 이름의 성공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많은 실패가 필요해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실패를 극복하는 힘이 훨씬 큽니다.”
윤필교 (기록문화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