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이집트의 빵
입력 2013-07-07 17:40
빵을 만들려면 먼저 밀가루에 이스트와 소금, 설탕을 섞어 반죽해야 한다. 이를 오븐에 넣고 가열하면 부풀어 오르는데, 밀에 글루텐이란 단백질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글루텐이 많을수록 공기층이 두터워 빵이 부드러워진다. 밀가루는 이 단백질의 함량에 따라 강력분(13% 이상), 중력분(10∼13%), 박력분(10% 이하)으로 나뉜다.
이집트에서 재배되는 밀은 글루텐 함량이 낮은 편이다. 잘 부풀어 속이 텅 비고 부드럽게 찢어지는 아이시(Aysh·둥글넓적한 이집트 전통 빵)를 만들려면 단백질이 많은 밀가루를 섞어줘야 한다. 이집트는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그런 밀을 수입해 왔다.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국영빵집은 국산 밀과 수입 밀을 보통 4대 6 비율로 섞어 아이시를 구웠다. 그런데 올 들어 이 비율이 7대 3으로 뒤집혔다. 빵이 주식인 나라에서 서민들이 사먹는 빵이 딱딱하고 맛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된 건 밀 수입이 급감해서다. 세계 최대 밀 소비국인 이집트는 연간 1000만t씩 수입하곤 했다. 정부는 이를 6개월치 이상 늘 쌓아뒀는데 지난 4월엔 재고가 30만∼40만t까지 떨어졌다. 두 달 버티기도 힘든 양이다. 카이로 항구에 마지막으로 밀이 들어온 건 2월이었다. 정국 불안에 외환보유액이 급감한 정부는 돈이 없었다. 국민의 불만이 커지자 4월 부랴부랴 18만t 수입계약을 맺었지만 그 밀은 9월에나 온다. 5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은 정확히 수입 밀 재고가 바닥난 시점에 축출됐다.
‘카이로에선 최소한 굶어죽진 않는다.’ 이는 아랍권의 오랜 상식이다. 이집트 국영빵집은 큼직한 빵 한 덩이를 미화 1센트에 팔았다. 이렇게 싼 값은 정부 보조금 덕이었다. 아랍어로 ‘생명’이란 뜻인 아이시는 이집트인의 필수 식품이기에 정부는 오랜 세월 보조금 제도를 유지했다. 이 값이 얼마나 싼 거냐면, 너무 싸서 암시장이 생길 정도였다. 국영빵집에서 빼돌린 빵은 주로 농부들이 웃돈 주고 사갔는데, 가축에게 사료보다 빵을 먹이는 게 더 쌌다고 한다.
무르시 정부의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은 암시장 부정 거래를 막아 정권을 지키겠다며 자발적으로 ‘빵 배달제’를 실시했다. 이집트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골목 빵집에 줄을 서서 아이시를 산다. 형제단은 지역 조직을 동원해 각 가정에서 구매 신청을 받고 국영빵집의 빵을 직접 배달했다. 이는 새로운 부정을 낳았다. 빵은 형제단과 친밀할수록 안정적으로 공급됐다.
무르시 정부는 재정난을 타개하려 국제통화기금(IMF)과 48억 달러 차관 협상을 하고 있었다. 하루빨리 이를 매듭지어야 밀을 사올 수 있는 시급한 문제였다. IMF는 지원 조건으로 빵 보조금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무르시 정부가 낸 아이디어는 ‘빵 배급제’다. 국민들에게 ‘레이션 카드’를 지급해 1인당 빵 구매량을 추적·통제한다는 구상이었다. 이집트인 4명 중 1명은 하루 1.65달러 이하로 생활한다. 무르시 정부는 이들에게 거의 유일한 먹거리인 빵을 통제하려다 거센 역풍을 맞았다.
1970년 이후 이집트는 3명의 대통령을 겪었다. 안와르 사다트, 호스니 무바라크, 무함마드 무르시는 모두 타흐리르 광장의 성난 군중과 마주했고, 그때마다 이집트인을 분노케 한 건 빵 문제였다. 이슬람주의를 내걸고 선출된 무르시는 사다트와 무바라크의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이데올로기는 국민에게 ‘기대’를 심어줄 뿐, 결코 ‘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두 이데올로기가 한바탕 전쟁 중인 한국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태원준 사회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