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은 아마… 마음은 프로 동네마다 ‘생활체육’ 열풍
입력 2013-07-07 17:47
서울 상도동 탁구전사들, 목동 핑퐁스, 인천 동춘동 히어로스, 대구 월성동 유나이티드, 광주 쌍촌동 레인보우. 지난 4월 첫 방송을 시작한 KBS 예능 프로그램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연예인 팀과 경합을 벌인 생활체육 동호인 클럽들이다. 앞의 두 팀은 이름에서 짐작하듯 탁구 동호인 클럽이고, 뒤의 세 팀은 볼링 동호인 클럽이다.
긴장감 넘치는 대결과 어디로 튈 줄 모르는 생활 체육인들의 예능감, 그리고 그들과 하나 된 연예인 팀의 모습은 건강한 볼거리를 선사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 진행된 볼링 편의 경우 손에 땀을 쥐는 경기가 계속되며 뜨거운 감동과 눈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덕분에 방송이 시작된 지 두 달 만에 ‘우리 동네 예체능’은 화요일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다. 시청자들은 “건강함과 웃음, 감동이 함께 한다” “국가대표 경기 보는 것 같이 짜릿하다” 등 칭찬을 쏟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10대부터 80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경기에 몰두하는 아마추어 선수들의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과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프로그램이 주목을 모으면서 배드민턴, 축구, 족구, 볼링, 스케이트에서 플로어볼, 암벽 등반에 이르기까지 400개가 넘는 동호회의 대결 신청까지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생활체육을 소재로 한 ‘우리 동네 예체능’은 바로 우리나라에서 ‘보는 스포츠’에서 ‘하는 스포츠’로의 대이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스포츠 문화는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나가 국위선양을 하거나 프로 스포츠 리그에 필요한 선수를 육성하는 엘리트 체육에 매달려왔다.
하지만 점점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주5일제 근무 등으로 인해 생활체육에 참여하는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했지만 지금은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이에 따라 ‘하루를 살더라도 건강하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잡게 됐다. 게다가 주5일 근무제 등으로 여가시간이 증가한데다 소규모였던 동호회가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되고 체계화되면서 급성장하게 됐다.
후진국형 관중 스포츠 문화에서 선진국형 참여 스포츠 문화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관람과 응원도 간접적인 경기 참여라고 할 수 있지만 몸을 쓰는 스포츠의 본질이 직접 하는데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다. 게다가 스포츠를 통해 국민의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생활체육회는 2005년부터 “7일(1주일)에 3회 이상 30분 이상 운동하기”를 권장하는 ‘7330 캠페인’을 추진해 오고 있다. 과학적으로 우리 인체가 운동을 통한 영향을 받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키자는 것이다.
생활체육의 활성화 추세는 최근 부쩍 늘어난 스포츠 동호회 활동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민생활체육회에 따르면 7월 현재 국민생활체육회에 등록된 동호인 클럽 수는 8만5952개(지역 8만1844개, 직장 4108개), 등록회원은 383만828명에 달했다. 빠르면 올해 안에 생활체육에 참여하는 인구 400만 시대를 열 전망이다. 국민생활체육회에 등록되지 않은 동호회 회원까지 포함하면 참여 스포츠 인구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독일이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스포츠 참여 인구 비율이 낮지만 증가세가 워낙 빠른 편이다.
국민이 참여해 직접하는 스포츠 종목도 114개에 이른다. 종목별로는 동네 조기 축구회로 대표되는 축구가 클럽 1만277개, 회원 58만1985명으로 가장 인기가 있다. 그리고 그 뒤를 생활체조, 게이트볼, 배드민턴, 탁구, 볼링, 테니스, 야구 등이 잇고 있다. 또한 전문가의 전유물로 여기던 익스트림 스포츠나 항공 스포츠 등 이색 스포츠 동호인 숫자도 크게 늘었다. 그리고 최근 사회인 야구 붐을 타고 야구 동호회가 부쩍 늘었으며 여자야구 클럽도 늘어나 자체 리그를 만든 것도 눈에 띈다.
하지만 생활체육이 제대로 정착하기위해서 아직 개선돼야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선 정부의 체계적인 생활체육 지원 시스템 구축에서부터 직장 동호회 보급 확대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점을 개선해야만 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생활체육 선진국인 독일처럼 지역 스포츠클럽을 정착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생활체육 활성화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우리나라 스포츠계도 ‘인위적으로 선수를 육성하여 메달을 따는 방식’이 아니라, ‘생활체육의 큰 틀에서 우수선수들이 발굴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스포츠클럽이 국민건강을 증진하는 주요 수단이 되고 있으며, 지역사회의 사랑방으로써 청소년 선도기능과 세대간 갈등해소 기능도 맡고 있다. 올림픽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선수들도 모두 스포츠클럽에서 생활체육을 즐기다가 엘리트선수로 발전했다. 이들 선수들이 은퇴하면 다시 돌아오는 곳도 스포츠클럽이다.
독일에는 현재 9만여개의 스포츠클럽이 있고, 등록회원 수는 3000만명을 넘는다. 독일 전체 인구가 약 8200만명이기 때문에 40%에 가까운 인구가 스포츠클럽에 소속돼 있는 셈이다. 독일의 선진적인 스포츠클럽은 구 서독이 1960년부터 15개년 계획으로 출발시킨 스포츠 시설 건설 계획인 ‘골든 플랜(Golden Plan)’에서 비롯됐다. 전 세계적으로 생활체육 정책의 모범으로 꼽히는 골든 플랜에 의해 걸어서 10분 이내의 거리에 다양하고 편리한 체육시설이 확충돼 있고, 이를 기반으로 스포츠클럽이 조직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생활체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국판 골든 플랜’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