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아랍의 봄

입력 2013-07-05 19:07

체코의 수도 프라하 중심가에 있는 바츨라프 광장은 민주화의 상징적인 거리다. 1968년 8월 20일 소련군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5개국군 20만명이 국경을 넘어 침공하면서 ‘프라하의 봄’을 지키려는 시위대와 점령군이 격돌해 100여명이 희생당한 곳이다. 성 바츨라프 기마상 아래에는 ‘공산주의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프라하의 봄’ 주동자에 대한 소련의 탄압에 반발해 1969년 분신한 카렐대(옛 프라하대) 철학부 학생 얀 팔라흐의 얼굴 부조가 새겨져 있다.

1960년대 안토닌 노보트니가 독재공산체제를 강화하자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민주·자유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결국 1968년 1월 노보트니가 물러나고 알렉산더 두브체크가 공산당 제1서기에 취임했다. 두브체크는 재판제도 독립, 의회제도 확립, 사전검열제 폐지, 민주적 선거제도 도입, 언론·출판·집회 자유보장 등을 담은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강령을 채택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잠시 민주화의 봄을 맞았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1979년 10·26사태로 막을 내리고 12·12 쿠데타로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학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정치적 과도기는 ‘서울의 봄’이라 불린다. 18년간 독재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국민들은 자유 민주주의 시대가 올 것을 희망했지만 전두환 신군부세력은 민주화를 열망하던 광주시민들과 국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면서 ‘서울의 봄’은 끝났다.

‘아랍의 봄’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집권세력의 부패, 빈부격차, 청년실업 등에 분노한 민중들이 반정부·민주화 시위로 수십년 군림해온 독재정권들을 무너뜨리면서 생겨난 말이다. 2년여 전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내고 사상 최초로 민주선거로 대통령을 뽑았던 이집트가 3일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했다.

민주주의 열망에 가득찼던 이집트 국민들이 군부 쿠데타에 힘을 실어준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슬람 집권세력이 원리주의만 강요하며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표출된 탓이라는데 아랍권이 ‘빵’을 얻는 대신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겨울’로 회귀할지, 성장통 끝에 다시 봄을 맞을지 두고 볼 일이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