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시장이 뜬다] 회장님∼ 미래의 위기 미리 막아주겠습니다!

입력 2013-07-06 04:04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가정(假定)은 쓸모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때 그 상황에서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령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사전에 적절히 대처했다면 재벌 오너가 수감되는 상황은 피했을 것이다. 또 남양유업이 대리점 주인들에게 불공정 행위를 강요하지 않았다면 소비자들의 비판과 질타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선제적 위기관리 능력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 특히 현대사회의 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해 허를 찌른다. 소비자들의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문제점이 전파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위기관리의 최선책은 위기의 징후를 포착해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만약 위기가 터졌다면 전문화되고 효율적인 대처로 사태가 산불처럼 번지는 것을 막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일상 활동에서도 각 기업의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국민이나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도 위기관리 능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위기관리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탄생하고 있다. 위기관리 시스템의 태동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기관리의 핵심은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 막는 우(愚)를 피하자는 것이다. 일반 기업 입장에서 위기가 발생한 뒤 생길 천문학적인 피해액이나 변호사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위기관리 컨설팅 회사에 비용을 지불하고 위기를 사전에 막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과거에는 로펌이나 컨설팅회사, 회계법인, PR 회사 등이 자신의 독자영역을 중심으로 고객들의 위기관리를 도왔다.

그러나 이제는 위기관리 컨설팅이 독립적이며 융합적인 영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여론의 흐름에 민감하고 이슈 대응에 탁월한 전문가들이 위기관리 컨설팅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위기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고 소송 등에 대비해 법무 인력을 늘리는 기업들도 많다.

삼성그룹의 위기관리 키워드는 준법 경영이다. 삼성은 그룹 내 준법경영실이 각 계열사의 준법 경영 여부를 상시 감시한다. 삼성 관계자는 5일 “최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나 정부의 규제 강화, 해외 시장에서 발생하는 각국 정부의 견제 등이 큰 틀로 보면 기업 입장에서는 모두 리스크”라며 “문제가 터진 후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발생 가능성을 차단하자는 의미로 준법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LG는 올해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조직인 ‘정도경영 TFT’ 산하에 윤리사무국을 신설하고 윤리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LG는 또 최근 3년간 법무 인력을 10%씩 늘렸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들 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특허소송 등 다양한 법률적 이슈에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SK텔레콤은 위기를 ‘기업의 경영목표 달성과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라고 정의하고 전사적인 위기대응 기구를 운영 중이다. SK 관계자는 “위기대응 기구는 최고경영자(CEO)를 보좌하는 현장경영실이 의장 역할을 맡고 마케팅·고객 상담·민원 해결 부서 등 다양한 조직이 참여한다”며 “이슈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유관 부서에 내용을 전달하고 그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로펌들도 노사 문제나 언론 대응과 관련해 기업에 컨설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관계자는 “기업들이 특정 이슈가 발생했을 때 커뮤니케이션 방향이나 노사관계, 회사 법규 관련 문제에 대해 자문을 요청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사안별로 전문 변호사가 자문을 하거나 기업 내 유관 부서와 함께 논의하며 대응 전략을 모색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효성은 지난달 말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효성 계열사인 ‘더 클래스 효성’의 2대 주주 김재훈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파격적인 조건으로 지분을 취득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곧바로 법무법인의 자문을 받아 그날 오후 입장 자료를 냈다.

위기관리 컨설팅 업체인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송동현 부사장은 “2009년 4월 회사 설립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기업의 위기관리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다”면서 “2년 전부터 대기업을 중심으로 위기관리 컨설팅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송 부사장은 “특히 최근엔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를 새로운 위기 채널의 확산으로 보고 이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윤해 권지혜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