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우주의 ‘병 속 편지’
입력 2013-07-05 17:52
“I am sailing. I am sailing.” 허스키한 목소리의 영국 출신 가수 로드 스튜어트가 부르는 ‘세일링(Sailing)’을 들을 때면 무언가 어렴풋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인생이라는 드넓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고 끝없이 항해하는 고집불통의 선장 같은 이미지랄까.
그런데 이 팝송이 발표된 지 2년 후인 1977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향해 계속 항해하고 있는 배(?)가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보이저 1호와 2호가 바로 그것이다. NASA의 딥스페이스 네트워크 안테나들은 23W짜리 송신기로 보이저호가 보내오는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요즘도 매일 여름철 별자리인 땅꾼자리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 98년 전에 바다로 띄워 보낸 병 속의 편지가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병은 글래스고 해군사관학교의 한 장교가 해류의 속도와 방향을 알기 위해 띄운 것이다.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 것은 보이저 1호에도 병 속 편지 같은 인류의 메시지가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이저 1호의 측면 중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부착된 12인치 크기의 구리 디스크에는 사진과 갖가지 소리들이 담겨 있다. DNA 구조와 지상 풍경, 수치연산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과 문화의 다양함을 알리는 115장의 사진과 함께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27곡의 각국 음악, 바람과 천둥, 아기 울음소리 등이 포함돼 있다.
최근 NASA 연구팀이 사이언스 지에 게재한 논문에 의하면 보이저 1호는 태양계의 영향을 받는 태양권을 아직 다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시속 7만3600㎞로 하루에 지구와 달 사이의 4∼5배 거리를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 1호의 현재 위치는 태양에서 약 185억㎞ 떨어진 곳이다. 인류 최초로 도달한 엄청난 거리지만, 알고 보면 98년 동안 겨우 15㎞밖에 가지 못한 영국의 병 속 편지와 비슷한 처지다.
우주에는 지구의 바닷가에 널려 있는 모든 모래 알갱이의 수보다 10배나 많은 별들이 있는데, 그중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는 별은 40조㎞(4.22광년) 떨어진 곳의 프록시마 센타우리 별이다. 2020년이면 동력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보이저 1호가 지금 속도대로 계속 날아간다 해도 그 별에 닿으려면 7만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된다. 우주가 너무 넓은 것일까, 아니면 인류의 로켓 속도가 아직은 너무 느린 것일까.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