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문체부는 힘이 세다
입력 2013-07-05 17:52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3월 11일 취임한 이후 문체부 출입기자들과 오찬 또는 만찬을 한 번도 같이 한 적이 없다. 바쁜 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70명이 넘는 기자들과 함께 의례적으로 밥을 먹는 게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관 주변에 자리를 잡은 몇 명에게만 발언 내용이 전달되고 나머지는 그냥 밥이나 먹는 꼴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 장관은 기자실에 빙 둘러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티타임을 선호한다. 취임 직후 첫 티타임을 가진 데 이어 취임 100일을 맞아 지난 3일 두 번째 티타임을 가졌다. 약 3개월 만의 티타임에 대해 그는 “상반기 절반을 일했으니 얘기도 나누고 하반기에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라며 “분기별로 한 번은 티타임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취임 기자간담회와 두 번의 티타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 등을 통해 유 장관이 거듭 밝힌 것은 박근혜정부의 국정기조인 ‘문화융성’에 대한 설명이다.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그는 “문화융성은 도달해야 할 수준이나 목표가 아니라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방법”이라며 “국민들이 문화를 향유하면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문체부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 언급했다. ‘문화융성’을 이끄는 주무 부처로 대통령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다 올해 예산도 10% 정도 늘어나 다른 부처 장관들이 모두 부러워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역할과 책임이 막중해진 것은 물론이겠지만, 업무를 처리하는 유 장관의 모습도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1600개에 달하는 문체부 지원 사업을 1000개 이하로 줄이는 방안에 대해 그는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유 장관은 “정부 지원금이 타율적으로 쓰인 측면이 있다. 높은 데서 돈을 달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빼앗기기도 했다”며 “관 주도의 일회성·소모적 지역 축제나 행사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과감히 잘라내고 자발적인 사업에 지원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체부 직원들이 각종 지원 사업의 영수증 챙기는 일에 매달리지 않고 문화 현장을 발로 뛰어 국민들과 소통하는 정책을 입안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이 퇴임 전후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나가서도 일을 잘 할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을 내보내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차라리 우리가 안고 있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된 영종도 카지노에 대한 사전 심사와 관련해 “카지노 사업자 선정 방식은 사전심사제가 아닌 공고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게 기본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김기덕 감독의 신작 ‘뫼비우스’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것에 대해 “제한상영가로 결정된 영화가 예술영화관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 장관의 이런 발언은 4일 정부가 발표한 ‘콘텐츠산업 진흥계획’에 일부 포함된 내용으로 그동안 여러 채널을 통해 이미 언급된 사항들이다. 분야별 세부 시나리오가 제시되지 않아 ‘문화융성’이라는 용어만큼이나 추상적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요즘 문체부의 분위기는 상당히 의욕적이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힘 있는 장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문체부 자체 승진 첫 장관이지 않은가. 하지만 힘이 커지면 실력발휘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문화융성’의 함정에 빠져 국민의 행복을 볼모로 힘자랑해서는 안 된다. 좀 더 구체적이고 공감되는 정책을 내놓아야 진정 힘 있는 부처가 아닐까.
이광형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