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이슈’ 판매 노숙인, 덤으로 그려 주는 그림 심금울리네∼ 신림역 임상철씨의 희망 찾기
입력 2013-07-05 05:00
둥근 공에 아슬아슬 올라선 저 피에로는 임상철(46)씨가 그렸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3번 출구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다. 매일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이곳에서 노숙인 자활 잡지 ‘빅이슈’를 판다. 임씨는 지난 4월 빅이슈 판매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열차 안의 자신이 저 피에로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는 “책이 안 팔리면 다음날 당장 굶어야 하는 생활이 피에로 공 타기처럼 위태롭게 느껴졌다. 고시원 방세도 내야 하고 올해 말 입주 목표인 임대주택도 잘될까 모르겠고, 자면서도 긴장되고 식은땀 나는 삶을 산다”고 했다.
저 그림은 연필로 그린 것이다. 임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사업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가족들과 헤어졌다. 막노동판에서 벽돌을 등에 지고 올리는 일명 ‘곰망’ 일을 하다 4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왼쪽 다리에 철심을 박아 장애를 얻었고 쪽방촌을 전전하다 노숙생활까지 하게 됐다. 밥값이라도 벌어보려 스스로 빅이슈 사무실에 찾아간 게 지난 1월이었다.
이후 반년 동안 임씨는 피에로처럼 공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저렇게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연필로 그림을 그렸고, 이를 복사해 빅이슈 잡지에 끼워 팔았다. 그에게 빅이슈를 사는 독자들은 잡지에다 덤으로 연필 세밀화를 감상할 수 있다. 이런 정성을 눈치 챘는지 반년 만에 ‘단골손님’이 꽤 생겼다. 어떤 날은 고마운 단골손님의 이미지를 그려 잡지에 살짝 끼우기도 한다.
임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책이 팔릴까 하는 걱정이 앞섰는데, 슬슬 책을 사주시는 독자들을 보고 가슴속에 울컥하는 게 있었다. 장사 수완도 없고 무뚝뚝한데 많은 분이 단골이 돼줬고, 3번 출구 옆 사진관 사장님은 커피와 냉수를 챙겨준다”고 했다. 빅판을 하며 만나는 이들이 고마워 그들에게 선물할 그림과 편지에 책 파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임씨는 연말까지 보증금 100만원을 모아 임대주택에 입주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빅이슈는 한 권에 5000원이다. 7월호가 발매된 지난 1일 그는 6시간 동안 30권을 팔았다. 판매액 15만원 중 50%인 7만5000원이 그의 몫이다. 다음날은 15권, 그 다음날은 4권을 팔았다.
빅판엔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반드시 서서 팔아야 하고(앉아서 팔면 구걸로 비칠 수 있다), 시민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으며, 하루 수익의 절반은 저축해야 한다. 이런 원칙을 지켜가며 판매되는 빅이슈가 5일 창간 3주년을 맞는다. 3년 만에 유료 판매부수 50만부를 달성해 사회적사업의 성공 모델로 자리잡았다.
임씨에겐 신림역에서 자신의 작품으로 거리 전시회를 열겠다는 꿈이 있다. 9월에 노숙인을 대상으로 하는 ‘민들레 문학상’에 도전할 생각이다. 그는 “상금이 꽤 된다던데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글·사진=김미나 기자 min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