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과거를 찾아 떠나는 순례의 여정

입력 2013-07-04 19:30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4·사진)의 신작 장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는 일종의 부조리극으로 읽힌다. 36세의 남자 다자키 쓰쿠루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개인 간의 거리, 과거와 현재의 관계,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16년 전,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 여름방학 때 고향인 나고야로 돌아온 스무 살 쓰쿠루는 이름 가운데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 등 색채가 들어가 있는 네 명의 친구들로부터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절교 당한다. 남자 친구 둘은 성이 아카마스(赤松)와 오우미(靑海)이고, 여자 친구 둘은 성이 시라네(白根)와 구로노(黑?)였다. 쓰쿠루 만이 색깔과 인연이 없다.

쓰쿠루의 아픈 과거를 알고 있는 여자 친구 기모토 사라는 마음에 걸려 소화되지 않은 무엇인가를 풀기 위해서라도 다시 그 친구들을 찾아보라고 권유한다. 아오와 아카는 각각 나고야에서 자동차 딜러와 기업연수센터 대표로, 구로는 핀란드인 남편과 결혼해 헬싱키에 살고 있고, 시로는 6년 전 세상을 떠났다.

나고야에 살고 있는 두 친구를 순차적으로 만나 16년 전 절교의 이유에 대해 묻자 그들은 뜻밖의 얘기를 들려준다. 시로가 쓰쿠루에게 강간당했다고 다른 멤버에게 호소했다는 것이다. 물론 쓰쿠루는 그런 적이 없다. 그녀가 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친구들조차 시로의 주장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오는 말한다. “넌 있는 것만으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로서 거기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면이 있었어. (중략) 우리 그룹에게 평온한 안정감 같은 걸 줬던 거야.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떠난 이후로 우리는 갑자기 흩어지기 시작했어.”(203쪽)

헬싱키까지 찾아가 만난 구로 역시 쓰쿠루가 강간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구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모두는 온갖 것들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 하나의 일은 다른 여러 가지 일들과 연결되어 있어. 하나를 정리하려 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것들이 따라와. 그렇게 간단하게는 해방될 수 없을지도 몰라. 너든, 나든.”(340쪽)

쓰쿠루는 이제 무슨 목적으로 과거를 찾아 순례해야 했는지 점점 그 이유가 모호해지기 시작하지만 이런 부조리한 부분을 남겨놓은 채 소설은 갑자기 끝난다. 16억원 이상의 저작권료와 떠들썩한 마케팅 여파에 비하면 소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양억관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