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재중] 열린 정치와 그 적들

입력 2013-07-04 19:04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그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등 역사적 결정주의와 이를 계승한 전체주의가 인류를 ‘닫힌사회’로 이끌었다고 비판하며, 합리적인 토론이 가능하고 다수 의견과 달리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된 ‘열린사회’를 지향한다.

2013년 대한민국은 ‘열린사회’인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정치권을 들여다보자. 정당정치는 대의민주주의의 꽃이다. 정치권이 민의(民意)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정당 내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새누리당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논란과 관련해 보여준 당내 논의과정은 ‘닫힌정당’에 가깝다.

김무성 의원이 자신의 비공개 회의 발언 발설자를 색출하려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대선 때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김 의원이 지난달 26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 비공개 부분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대선 전에 입수해 읽어봤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사실이 보도되자 김 의원 측은 김재원 전략기획본부장을 발설자로 지목했다. 그러자 김 본부장은 김 의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저는 요즘 어떻게든 형님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 중이었는데 이런 소문을 들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오니 혹시 오해가 있으시면 꼭 풀어주시고…”라고 결백을 호소했다. 김 의원 측은 비공개 발언을 처음 보도한 기자에게도 “누가 얘기해 줬는지만 말해 달라”고 종용했다고 한다. 오직 발설자 색출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다. 이번 일은 일종의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폐쇄적인 논의구조, 비정상적인 색출과정은 ‘3김 시대’와 같은 제왕적 보스(Boss) 정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비공개 발언 유출이 아니라 돌출 발언 자체에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전 유출 의혹이 제기되는 시점에 김 의원이 민감한 발언을 한 것이 문제였다. 비공개 회의란 자유로운 내부 토론을 위해 편의상 기자들을 퇴장시키는 것이지 비보도를 전제로 한 게 아니다. 얼마든지 비공개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취재할 수 있다. 더욱이 당시 회의에는 20명가량 참석해 보안 유지가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의원 본인이 발언에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또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공개돼도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정제된 발언을 해야 한다. 설령 비공개 발언이 유출됐더라도 큰 정치인이라면 자신을 성찰하며 넓은 아량으로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문제의 발언은 쇄신파 남경필 의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가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김 의원이 이를 거세게 반박하면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화록 공개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남 의원의 문제 제기는 합리적인 것이었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또다시 3일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비공개 발언을 처음 보도한 기자와 전화통화도 하지 말라는 얘기까지 했다고 하니 귀를 의심케 한다.

김 의원이 유력한 차기 당권주자 또는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다지만 그가 자유로운 토론을 저해하고, 언론의 보도기능을 무력화하려고 한 이번 사태의 문제점을 당 내 누구도 지적하지 않고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한다면 새누리당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김재중 정치부 차장 j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