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봄 위기] 오바마, 조속한 민정 이양 요구

입력 2013-07-04 18:31 수정 2013-07-05 01:52

미국은 이집트 사태 와중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고 강조해 왔다. 시위대·군부와 형식상 ‘민주적으로’ 집권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 정부 사이에서 중립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로 무르시 대통령이 축출됐지만 미국의 ‘미묘한’ 입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쿠데타 직후 백악관에서 긴급회의를 가진 뒤 이집트 군부가 조속한 시일 내 책임 있게 민정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선거 절차를 거쳐 권력을 완전히 이양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또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하고 헌정을 중단시킨 데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군부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비친다. 하지만 군부에 대해 조속히 민정 이양을 하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해석에 더욱 힘이 실린다.

특히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민주주의는 선거 그 이상의 것”이라고 말한 뒤 “무르시 대통령은 국민이 시위를 통해 드러내는 요구에 더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말해 비난의 방점을 군부보다 무르시에 두는 듯한 자세를 보였다.

그는 이번 조처를 쿠데타로 규정할지에 대해서도 지극히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사키 대변인은 “상황이 매우 긴박하고 유동적이어서 쿠데타가 진행 중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관심이 쏠리는 것은 연 13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대이집트 군사원조의 중단 여부다. 미 의회는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에 대해서는 군사원조를 중단하도록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미국이 원조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집트 군부가 임시 대통령으로 군부 지도자 대신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한 것도 이러한 미국의 의향을 읽은 결과로 보인다.

한편 무르시 축출에 대한 아랍세계의 반응이 ‘환희’에서부터 ‘분노나 충격’까지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반정부 세력이 2년 이상 내전을 벌이는 시리아의 국영방송은 무르시의 축출 소식을 환영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도 대체로 무르시의 축출을 환영하는 입장을 보였다.

무르시의 가장 강력한 지원 국가였던 카타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무르시 정권과 가까운 터키는 무르시 대통령의 감금을 즉각 해제하라고 촉구하고 군부의 개입을 강력 비판했다. 지난달 내내 반정부 시위를 겪어 민감해진 데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역시 이슬람 정책을 밀어붙이는 등 무르시 정권과 비슷한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