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봄 위기] 한치 앞 안보이는 정국… 세력간 충돌 끊임없어
입력 2013-07-04 18:31 수정 2013-07-04 22:34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집권 1년 만에 물러난 뒤 이집트 정국은 안갯속과 같은 혼돈에 빠졌다. 친무르시파와 반무르시파 시위대 간 충돌도 잦아들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군부는 이날 아들리 알 만수르 헌법재판소 소장을 임시대통령으로 삼는 등 사태 수습 방안을 내세웠다. “장기집권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약속했다. 군부는 야권과의 협의를 거쳐 향후 선거 일정을 확정한 뒤 선거가 끝나면 권력을 이양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민정이양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별로 없다.
군부의 움직임은 2011년 민주주의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사임했을 당시 상황을 연상케 한다는 평이다. 무바라크 실각 이후 전면에 나선 군부는 무르시 대통령이 선출된 후에도 한동안 권력을 내놓지 않고 민간정부와 팽팽한 힘겨루기를 했다. 결국 군부 실력자였던 후세인 탄타위 장군이 해임되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된 바 있다.
대규모 시위로 대통령 반대 여론이 높아지자 독자적인 행동에 나서 권력을 장악한 모습이 그때와 닮은꼴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군의 귀환은 신뢰할 수 있는 시민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혁명 당시의 약속을 이행하려는 노력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썼다.
서방 세계의 관심은 무르시 이후 이집트가 이슬람주의에서 탈피할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현재로선 무르시가 속한 이슬람 정치조직 무슬림형제단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무르시 대통령은 사실상 감금 상태고, 무슬림형제단 지도층 인사 300여명은 체포당했다.
이슬람주의파에 그보다 치명적인 건 이집트 국민들이 지난 1년의 혼란에 지쳐 있다는 점이다. 좋아질 기미가 없는 경제상황과 열악한 치안이 평범한 중산층까지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게 했다는 평이 나온다. 시카고트리뷴은 “최근 일어난 대규모 반무르시 시위는 이슬람주의 통치를 추구하는 무슬림형제단이 자유주의자와 세속주의자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게 했을 뿐 아니라 경제적 무능에 지친 수백만의 이집트인도 화나게 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무르시 대통령과 무슬림형제단, 나아가 이슬람주의자들이 아직 상당한 세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변수다. BBC의 중동 담당 에디터인 제레미 보웬은 “이집트군은 무슬림형제단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한 가지 의문은 무슬림형제단이 2011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잠자코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슬림형제단이 오래전 폭력을 포기했지만 이집트엔 그렇지 않은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있다”며 “군부도 계산에 넣고는 있겠으나 이건 이집트의 미래를 건 도박”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이슬람 무장단체에 의한 테러 등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군부의 정치력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무르시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선출됐음에도 불구하고 실각, 대통령조차 무시할 수 없는 세력과 행동력을 군부가 갖고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재 군부 대표로 전면에 나서 주목을 받고 있는 압델 파타 엘 시시 국방장관은 선뜻 민정이양과 정치 불개입을 선언해 기대도 받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