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하면… 낙하산 없는 ‘풀뿌리 정치’ 기대
입력 2013-07-04 18:26
여야가 4일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에 대한 공천 폐지를 본격 추진하고 나선 것은 기초자치단체를 중앙정치 대결의 장에서 벗어나게 해주자는 취지다. 그렇게 해서 기초단체가 풀뿌리 생활정치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보가 난립하면서 정치비용이 증가하고 현직인 단체장·의원 및 돈 많은 후보가 유리해질 수 있는 등 부작용도 예상된다.
여야는 이미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당 문재인 후보 공약을 통해 기초단체 공천 폐지 방침을 밝혔다. 박 후보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모두를, 문 후보는 기초의원만 공천을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후 올 들어 국회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생겨나면서 폐지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여야 각각 자체 정치쇄신 기구를 만들어 검토해 왔다. 특히 민주당은 김한길 대표가 ‘중앙당 기득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폐지를 적극 추진해 왔다.
중앙당 공천이 없어지면 후보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존에는 각 당에서 자체 경선을 치러 한 명만 후보로 내세웠고 나머지 경선 참가자들은 출마가 금지됐다. 하지만 공천이 폐지되면 공천탈락 없이 아무나 다 나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후보들이 자신의 소속 당과 정치 성향을 밝힐 수 있어 정당기호만 없어질 뿐 역시 중앙정치 차원의 대결 구도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심지어 정치권에선 “수십명의 빨강(새누리당) 녹색(민주당) 파랑(무소속 안철수 의원 측) 잠바를 입은 후보가 돌아다닐 것”이라는 우스개가 돌아다닌다.
공천이 폐지되면 ‘낙하산 공천’이 없어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출마하게 되고, 지역 현안이 선거의 중심이 되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무시하기 어렵다. 출마자가 많아져 유권자들이 후보를 헷갈리거나 후보들에 대한 관심도가 오히려 떨어질 수도 있다.
정치비용도 폭증할 전망이다. 특히 선거자금이 풍부한 후보가 유리해 일각에선 “졸부들의 잔치가 될 것”이란 말들도 나온다. 여성이 불리해질 수도 있는데, 민주당은 전체 기초의원의 20% 정도로 여성명부제를 추가 도입해 여성한테만 할당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야가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동시에 공천을 하지 말아야 취지가 살 수 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어느 한쪽만 공천을 포기하면 공천을 하는 당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 때 기초단체장은 당시 한나라당에서 전국적으로 82명, 민주통합당은 92명, 자유선진당은 13명이 당선됐다. 기초의원도 한나라당 1247명, 민주당 1025명, 자유선진당은 117명을 확보했다. 현재 선진당은 새누리당에 흡수된 상태로, 여야 양당이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당 공천이 폐지되면 현직이 유리해지기 때문에 여야 모두 결국 폐지를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이런 이유로 정당 공천 폐지가 양당의 ‘기득권 나누기’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