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 발견’ 최후의 승자는 ‘자연’
입력 2013-07-04 17:23
오래된 신세계/숀 윌리엄 밀러/너머북스
1492년 에스파냐 왕실의 후원으로 항해에 나선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 아메리카. 거긴 사람들로 ‘꽉 찬 곳’이었다. 콜럼버스뿐 아니라 포르투갈 출신 항해가 페르디난드 마젤란 등 다른 여러 유럽 탐험가들이 그런 기록을 남겼다. 그럼에도 이는 성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과장으로 후대에 의해 치부됐을 뿐이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당시 인구가 4000만∼7000만명에 달했고 그 대부분이 지금의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멕시코 계곡에 있던 아스텍 제국의 도시인 테노치티틀란, 텍스코코에만 각각 20만명이 넘게 살았다. 비슷한 시기,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보다 도시 규모가 컸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이 ‘야생의 텅 빈 신세계’였다는 우리의 통념은 어찌된 것일까. 이는 정복과 식민의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실제 유럽 식민 정복자들이 함께 가져간 치명적 돌림병 에 따른 시간적 착시 탓이 크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들이 들어온 불과 1세기 동안 선주민들의 90%가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곳이 동식물로 다시 넘쳐나는 그야말로 신대륙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돼 준 것이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환경사다. 그 땅에서 이뤄진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역사적 사건과 연결지어 장대한 스케일로 펼쳐 보인다. 환경사라는 점에서 짐작하겠지만 그의 철학은 자연에 무게중심을 둔다.
그 자연과 공존하면서 라틴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이룬 농업적 성과는 놀랍다. 그곳엔 인류문명의 진보를 상징하는 바퀴나 철기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비결은 자연과의 공존에 있었다. 바로 땅심을 좋게 하는 방법으로 엄청난 수확을 거뒀는데 비결은 숲을 태워 땅을 기름지게 하는 화전이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숲을 불태운 게 20, 30년마다 같은 땅에서 되풀이했다. 장기 휴경법이라고나 할까.
아스텍 문명의 돋운 땅 농법인 ‘치남파’에는 곡식 있는 곳에 물을 대는 게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 곡식을 심는 역발상의 지혜가 있다. 잉카 제국의 가파른 계곡에 만든 계단식 밭은 그 견고함에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러므로 그곳의 식인 풍습이 식량이 모자란 탓이라는 통념은 허무맹랑하다. 그들은 복수의 한 방식으로 그런 문화를 택한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라틴아메리카 환경사는 이렇게 콜럼버스의 발견 이전에 존재했던 문명사에서 출발해 식민지 시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립, 그리고 현재의 산업화와 도시화에 이르기까지 6세기에 걸쳐 인류의 역사적·사회사적 사건이 환경에 미친 궤적을 숨 가쁘게 좇는다. 그런데 환경사 관점에서 본다면 신대륙의 진짜 승리자는 자연이다. 감소한 인구가 다시 회복하는 수세기 동안 그 땅의 풀과 나무는 인간의 방해 없이 맘껏 번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 숀 윌리엄 밀러 미국 브리검영대학 교수는 환경사 연구자이면서 식민사 연구자인데, 우리가 라틴아메리카 환경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건 자신이 환경속의 다른 여러 종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파헤친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영감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사실 라틴아메리카 선주민들도 자연을 소비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들에게도 자연은 자원공급처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연을 두려워 할 줄 알았다는 점에서 우리와 달랐다. 책이 가진 미덕은 자연을 대하는 우리의 가치관과 태도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데 있는 것 같다. 조성훈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