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고승욱] 스폰서 없애자는 게 왜 과잉입법인가
입력 2013-07-04 18:59 수정 2013-07-04 15:26
“작은 성의 표시가 큰 부패를 막는다는 억지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때 공무원 사회에서 유행했던 우스개가 있다. 돈이 많은 부모, 재력이 출중한 장인, 큰 사업을 일군 어릴 적 친구라는 세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는 갖추고 있어야 장관을 바라보는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있다는 게 그것이다. 월급 정도는 친구나 후배들과의 술값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술자리에 프리미엄급 위스키가 빠지지 않았던 시절 이야기다.
사실 공직사회나 민간기업을 막론하고 업무추진비가 전반적으로 지급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어디를 가도 팀장급에게는 법인카드가 나오고, 회식 때 참석자들이 먹은 만큼 돈을 내는 더치페이도 흉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위계질서가 엄격할수록 고되게 일하는 후배를 챙겨주는 게 선배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를 패스한 엘리트 집단 안에서는 상하좌우 인간관계를 얼마나 잘 맺어 가는가가 유·무능의 척도가 되기도 했다. 주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그러다보니 돈 많은 부모도, 재력가인 장인도 없는 공직자에게 밥값이나 술값을 대신 계산해주고, 명절이면 떡값이라고 성의를 표시하는 ‘스폰서’는 훌륭한 대안이 됐다.
하지만 가랑비도 오래 맞으면 옷이 흠뻑 젖는다. 밥 한 끼 사는 데야 큰 돈이 들지 않겠지만 몇 해 계속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떡값도 한두 차례 받다보면 액수가 커지고, 건너뛰기라도 할 경우 야속한 마음이 생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바뀌기 마련이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관계에 민원이 개입하고, 돈독한 우정도 금이 갈 수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작은 정성을 건네던 스폰서가 어느 날 갑자기 준 돈의 내역이 적힌 장부를 검찰에 들이미는 경우마저 생긴다. 이는 누구보다 공무원들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뒤탈이 없는 스폰서를 대표해 친형제 같은 어릴 적 친구가 오래된 우스개 속에 등장한 게 아닌가 싶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김영란법)은 오랫동안 논란이었지만 입법취지는 간결하다. 공직사회에서 스폰서를 추방하자는 것이다. 스폰서를 서너 명씩 거느려야 유능하다는 그릇된 생각이 바뀐 지는 한참 됐지만 이 관행은 일부 공직자들 사이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법을 제안할 때 김 전 위원장은 “스폰서를 없애지 않으면 부정부패를 막을 수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그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학연·지연을 찾아 은밀한 관계를 맺은 뒤 “큰 일을 하려면 지갑이 두둑해야 한다”며 용돈을 건네고, “작은 성의표시가 큰 부패를 막는다”라고 말했던억지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만큼 사회가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공짜 점심을 먹으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입증이 끝난 사안이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중재한 김영란법 조정안이 발표됐다.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모든 공직자를 형사처벌하는 원안이 과잉입법이라는 반발에 크게 후퇴해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내용으로 수정되면서 여론이 악화된 탓이다. 정 총리가 직접 나서 내린 결론은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형사처벌하고, 없으면 과태료를 물린다’이다. 형법상 수뢰죄가 성립하려면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모두 인정돼야 하는데, 대가성이 없더라도 직무관련성만으로 형사처벌할 수 있게 했으니 이전보다 훨씬 진전된 것 아니냐는 식이다.
조정안은 이해당사자의 충돌을 절충했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명분은 옳지만 과잉입법이라는 반발이 강하므로 중간쯤에서 타협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풀어서 스폰서라는 악습이 공직사회에서 사라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옳고 그름이 명백한 사안을 놓고 산술적 평균치를 택한 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스폰서라는 공직사회의 관행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한다면 김영란법의 원안을 수정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