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염성덕] 유해송환과 인도주의
입력 2013-07-04 19:02
유해 발굴 현장은 문화재 발굴 현장을 방불케 한다. 적어도 유해를 찾을 때 쏟는 정성은 문화재를 발굴할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는다. 호미 같은 기구로 조심스럽게 산야의 흙을 한 꺼풀씩 벗기고, 벗겨낸 흙을 체로 친다. 이 과정에서 뼛조각이나 작은 유품이라도 나오면 정밀감식을 위해 모아둔다. 현장을 참관한 이들은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고 말한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아군(국군·경찰·유엔군) 유해 7400구를 발굴했다. 신원을 확인한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하고,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유해는 화장해 서울현충원 충혼당(납골당)에 안치한다. 이 기간에 북한군 617구, 중국군 389구의 유해도 찾아냈다. 적군 유해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북한군·중국군 묘지)에 안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군 유해를 송환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올해가 정전 60주년이고, 한국 정부가 중국군 유해를 잘 관리해 왔고, 중국 유족이나 가족이 유해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4개월 간 5억원을 들여 적군묘지를 깔끔하게 재단장했다. 박 대통령 말처럼 잘 관리하고 있다.
중국 류옌둥 국무원 부총리는 너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보고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의 유해 송환 제의는 6·25전쟁 당시 적군이었던 ‘중공군’에 대한 화해와 관용의 정신을 국내외에 표출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국이 중국군 유해를 발굴할 때마다 유엔사 정전위원회를 통해 중국에 통보했지만 중국은 인수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북한에 있는 한국군 유해 송환과 남한에서 발굴한 북한군 유해 인수에 부정적인 북한을 고려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박 대통령의 전향적인 제의를 계기로 중국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중국이 적군묘지에 안장된 유해를 인수한다면 이는 한·중 간에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미군 유해를 인도하면서 반대급부를 요구해 왔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미군 유해 220여구를 돌려주는 대가로 거액을 챙겼다고 한다. 유해 송환 문제를 정치·외교·군사·물질적으로 이용하면 곤란하다. 오로지 인도주의와 제네바협약 정신에 입각해 처리해야 옳다. 북한에서 전사한 한국군 유해는 미군을 통해 12구가 돌아왔을 뿐이다. 이제는 북한도 달라져야 한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