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 소설집 ‘떠다니네’ 물 위에 포말처럼 떠있는 사랑의 자리
입력 2013-07-04 17:27
소설가 조용호(52·사진)가 8년 만에 세 번째 소설집 ‘떠다니네’(민음사)를 냈다. 그의 소설엔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부박한 세상 위를 떠다니는 포말이 일렁인다.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는 이별 후의 삶이다.
표제작은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내로부터 이혼 서류를 받아든 남자가 혼자 남중국해로 여행을 떠나온 이야기다. “아내의 마음은 이미 육중한 철제 대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아직 헐겁게 삐걱거리는 샛문이라도 어딘가에 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마저 완전히 버릴 수는 없었다. 여행을 떠나온 것은 그 쪽문을 찾아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떠다니네’)
아이를 새로 만들자고 아내에게 말을 붙여도 보았지만 아내의 몸은 열리지 않고 남자의 몸도 이미 시들해진 상태다. 그러니까 중년의 위기에 봉착한 남자의 쪽문 찾기가 소설의 테마인 것인데, 남중국해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는 남자에게 이렇게 들려준다. “저는 맹그로브에 관심이 많아요. (중략) 씨앗이 물에 떨어져 3개월 정도 떠다니다가 최적의 장소를 찾아 물 속에 뿌리를 내린답니다.” 남자 역시 맹그로브처럼 이 세상을 떠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감한다.
조용호 특유의 담백하고 서정적인 문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재현되는데 최근작 ‘달과 오벨리스크’는 그 문장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카이로 한국학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집트에 온 ‘나’는 나일강 유람선에서 ‘우연’이라는 이름의 한국 여성을 만나지만 ‘나’에겐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 17년 전, 결혼 직전까지 갔다가 헤어진 여자가 ‘나’와 재회한 지 3년 만에 세상을 뜬 것이다. 그 아픈 기억이 나일 강 물결 위에 흘러가고 있으니 ‘우연’이라는 여자와의 관계도 겉돌 뿐이다. “불멸의 사랑이란,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불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실 끊임없이 사랑하고 이별하는 일이 반복되는, 그 과정 자체의 불멸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달과 오벨리스크’)
7편의 수록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체로 젊음에서 벗어나 중년에 이른 남성이다. 그들은 모두 ‘이별 그 후’를 살아가면서도 마음 한 편에 작은 불씨를 간직하고 있다. 조용호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렇듯 낭만적 사랑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과거의 사랑이 현재적 사랑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를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라고 칭하는 건 이 때문일 것이요, 사랑이 태어난 자리가 포말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