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이토록 난해한 줄 이제사 알다니…”

입력 2013-07-04 17:26


김원우 장편소설 ‘부부의 초상’

소설가 김원우(66)는 근년 들어 신상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해 봄 계명대 국문과에서 정년퇴직한 뒤 느닷없이 신병을 앓아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겨우 건강을 추스르고 서울의 집 근처에 작업실을 구한 뒤 붙든 글이 원고지 1600장 분량의 장편 ‘부부의 초상’(강출판사)이다.

소설은 지방 신문 문화부장 출신의 안 기자이라는 인물이 30년 동안 알고 지낸 한 화가 부부에 대해 회상하는 형식이다. 회갑 기념전 초대장을 받은 날부터 시작해 전시회 가는 날로 끝나니 실제 경과한 시간은 일주일이지만 회상을 포함하면 소설의 시간은 1982년 무렵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다.

문화부 고참 시절의 안 기자는 노옥배라는 화가를 만나는데 그의 아내는 뜻밖에도 안 기자가 신참 시절에 알고 지낸, 그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이자 약사 출신인 고은미였다. 문화면 고정칼럼 필자로 만난 고은미와 세 번째 회동 때 둘은 농밀한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그날 잘 들어갔어요?” “엉덩이께는 우야다가 멍이 들었는가?” “여기 초록집 계단에 앉아서 성교 비스무리한 거 하다가 다친 걸 거예요”(125∼127쪽 축약)

그런 일이 있고 한참 뒤, 안 기자는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꿈에도 짐작하지 못한 채 노화백과 동행해 그의 작업실로 가던 중 노 화백에게 속은 것을 깨닫는다. “남자라면 누구나 그 첫 번째의 ‘꼬시킴’이 미처 배설로 마무리되기 전부터 허망한 그 뒤치다꺼리에 헉헉댈 수밖에 없는 줄이야 절감하면서도 그 고락에 대해서 체면상 함구하지만, 그는 제 자신의 생 경험을 그렇게 희화화함으로써 지 배우자의 섹시한 존재감을 무화시키는 사기술을 구사했다.”(210쪽)

의뭉스런 노 화백의 속물근성에 대한 안 기자의 복잡한 심정을 담은 서술이다. 속물들의 세상에 대한 김원우 소설의 까발림은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그 속물성을 지방 신문기자의 생태나 지방화단을 무대로 펼치고 있는 건 아무래도 작가 자신이 대구에서 보낸 한 세월의 매듭을 어떻게든 이번 소설에 녹여내야 했음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안 기자를 온통 혼란에 빠트린 노 화백의 화술이 의도적인 사기술일 리야 없는 것이고 보면, 세상과 멀찍이 떨어져 작품에만 몰두하며 세상 명리에 일정한 선을 그은 듯 보이는 노 화백이나 약사의 생업에 매진하면서 시가 되지 못하는 일상을 나름 정직하게 응시하고 있는 듯한 고은미 양쪽 모두 기실 딜레탕트(호사가)적 예술 애호 혹은 속물적 삶에서 예외일 수 없을 터이다.

그런데 고은미는 남편의 회갑 기념전에 참석한 안 기자에게 느닷없이 자신의 시집 해설을 써줄 것을 부탁하고 노 화백 역시 이를 거든다. “당최 해설이든 발문이든 그 품앗이를 맡길 사람이 마땅찮다 이카네. 그런 글을 주문 오는 대로 써주는 사람이야 천지빼까리라 캐도 지 눈에는 도통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래 뻔한 말을 와 해쌓는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카든이 안 실장이 써주면 금상첨화라 이카고 있네.”(451쪽)

이어지는 안 기자의 푸념이야말로 소설의 압권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나 만만히 보고 알 만큼 안다고 치부한 이 세상이, 또 그 속의 인간이 이토록 난해한 줄 이제사 알다니. 그야말로 유구무언이다. 그렇게나 흔전만전으로 글을 ‘써제낀’ 잡문가 주제에 감히 무슨 말을 더 보탠단 말인가.”(455쪽) 김원우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사투리를 글 전체에 흥건히 깔아놓았으되 이는 작중 인물의 생생한 재현을 위한 의도인 바에야 다소 껄끄럽게 들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