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대통령機 영공통과 불허 ‘수모’
입력 2013-07-03 19:40 수정 2013-07-03 23:30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유럽 여러 나라들로부터 탑승기의 영공 통과를 불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볼리비아는 미국의 국가 기밀을 폭로한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망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모랄레스 대통령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가스수출국 포럼 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이 같은 봉변을 당했다. 러시아 방송에 출연해 “요청이 들어온다면 스노든의 망명을 긍정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밝힌 뒤였다.
그는 이날 모스크바를 출발, 스페인에서 탑승기 주유를 마치고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로 돌아가던 중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4개국이 돌연 그의 영공 통과를 불허하는 바람에 발이 묶였다. 스노든이 모랄레스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고 있다는 소문이 돈 직후 그가 볼리비아로 가버릴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조치였다. 볼리비아 측은 부랴부랴 오스트리아 빈 공항의 착륙 허가를 얻어 불시착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정부는 항공기 검색을 해야만 자국 내 주유를 허가할 것이라고 밝혀 모랄레스 탑승 항공기는 계속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스노든이 정말 모랄레스 대통령과 동행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오스트리아와 볼리비아 양국은 모두 스노든이 비행기에 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데이비드 초케완카 볼리비아 외무부 장관은 “누가 거짓말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불시착은) 대통령의 목숨이 걸린 일로 불쾌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쿠바 베네수엘라 등 반미 성향 국가들은 유럽국들의 항공로 폐쇄 뒤엔 미국이 있다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과 지금은 고인이 된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함께 중남미 강경좌파의 축을 이룬 인물이어서 이번 영공통과 불허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강한 압박으로 스노든의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가 망명을 신청한 21개국 중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곳은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뿐이다. 브라질 중국 인도 노르웨이 폴란드 러시아는 사실상 그의 청을 거부했고, 쿠바 프랑스 독일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니카라과 스위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스노든은 지난달 10일 홍콩에서 미 정부의 민간인 개인정보 수집 및 해외정보 수집 행태 등을 폭로한 뒤 같은 달 23일 모스크바로 도피,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환승구역에 머물러 왔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