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신종수] 박인비의 스윙과 기업 혁신

입력 2013-07-03 18:55


박인비의 엉성해 보이는 스윙폼이 화제다. 박인비가 메이저대회 3연승을 했기에 망정이지 만일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박인비의 스윙폼을 보고 수군거렸을 것이다.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이상한’ 스윙폼 때문이라며 너도나도 한마디씩 레슨을 하려 들지 않았을까. 실제로 박인비가 몇 년 동안 슬럼프에 빠져있던 시기에는 그의 주위에서 이런 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박인비의 메이저대회 3연승이 값진 것은 그의 인내심 때문이다. 자신의 스윙에 대한 온갖 소리를 들으면서도 묵묵히 긴 터널을 지나왔다. 대부분의 여자 골퍼들은 아름답고 우아한 스윙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공을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기 위해 이런 스윙을 포기했다. 따라서 그의 결정은 용기 있고 창의적인 측면이 있다.

국화빵 같은 획일화의 함정

사실 성과가 나오기 전에는 사람들은 좀처럼 남과 다른 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8자 스윙으로 유명한 미국 프로골퍼 짐 퓨릭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던 당시 주위로부터 스윙폼을 바꿔보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하도 성적이 좋지 않자 그도 주위 의견을 받아들여 남들과 비슷하게 스윙을 하며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남들처럼 백스윙을 똑바로 하면 마치 팔이 등 뒤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결국 자신만의 8자 스윙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독특한 스윙으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골퍼로 자리 잡았다.

만일 박인비에게 국화빵 같은 틀에 박힌 스윙을 강요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키와 체형, 근력과 유연성, 심지어 성격에 따라 사람마다 스윙폼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경우 남들과 비슷한 스윙을 강요받는다. 유연성과 근력이 따라주지 않는 중년의 주말골퍼들마저 교과서적인 스윙 사진을 보면서 팔을 쭉 펴서 높이 들고, 어깨를 90도 이상 돌리고, 허리를 활처럼 휘게 하려고 애쓴다.

물론 기본기는 중요하다. 그러나 혁신을 가로막는 획일화나 몰개성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혁신은 사실 남들보다 우수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출발한다.

기업에게 혁신은 생존의 문제

요즘 기업들이 혁신과 창의력을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혁신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저성장에 빠지지 않고 지속발전하기 위해 오랫동안 모색해온 돌파구다. 기업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아무리 흔한 아이템이라 하더라도 끊임없이 혁신을 해야 살아남는다. 똑같은 커피를 팔던 그 많던 다방들이 스타벅스 출현에 맥을 못 추고 사라진 게 단적인 예다.

휴대전화에 안주해 오다 애플에게 스마트폰으로 한방 맞았던 삼성이 재빨리 뒤따라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는 한발 앞서 시장을 선도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창의력과 혁신은 다그친다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온갖 시행착오와 인내의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오랜 연구와 실험, 고민과 사색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누군가 혁신을 시도한다면 기다려줘야 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결과가 실패로 나타나더라도 나무라지 말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풍토가 중요하다.

요즘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사내외 벤처 지원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혁신을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성과를 낼 경우 보상을 하되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한다. 혁신을 목적으로 치밀한 계획과 연구를 거쳐 최선을 다했음에도 실패하는 경우, 즉 ‘똑똑한 실패(intelligent failure)’는 칭찬해 줄 필요가 있다. 당장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투자하고 지원하다 보면 언젠가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신종수 산업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