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태료 부과해놓고 ‘무혐의’ 익명 처리 원칙도 오락가락… 공정위 의결서 엉망

입력 2013-07-03 18:27


10년 넘도록 잘못된 의결서를 게시하는 등 공정거래위원회의 정보관리 실태가 엉망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3.0’을 선포하고 “정확한 통계·자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 것과 전혀 맞지 않는 행태다. 불공정 행위를 낱낱이 알려 재발을 막고 기업의 공정거래 준수를 이끈다는 의결서 공개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국민일보가 3일 공정위 홈페이지에 게시된 의결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공정위가 2003년 1월 의결한 ‘도매법인의 거래약정서상 불공정약관에 대한 사건’은 22건의 다른 사건에 모두 같은 내용의 의결서가 게시돼 있다. 제대로 처리했다면 모두 다른 22건의 의결서가 첨부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피심인이 ‘H청과 대표이사 N씨’로 기재된 동일한 의결서가 올라와 있다. 공정위가 10년이 넘도록 잘못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에 석연찮은 내용도 있다. 2005년 7월 의결한 CJ㈜ 소속 직원들의 조사방해 처분 사건에서 공정위는 정모 상무와 신모 부장에게 각각 과태료 1000만원을 부과했다. 의결서에는 분명히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홈페이지의 사건검색 화면에는 이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표시돼 있다.

피심인 개인을 익명 처리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오락가락하는 문제점도 노출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의결한 LG전자 및 임직원의 조사방해 사건에서 공정위는 LG전자 임직원 3명에게 과태료 500만∼1500만원을 부과했지만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7월 의결한 SK C&C 및 임직원의 조사방해 사건에서는 과태료를 부과한 직원 3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피심인이 의결서에 이름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요청하면 익명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해명하지만 실명을 원하는 피심인이 거의 없을 것인 만큼 궁색하다.

기업명 공개기준도 불투명하다. 2011년 5월 의결한 5개 전선제조·판매회사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는 피심인 회사 5곳의 이름을 ‘엘**’, ‘대***’, ‘가***’, ‘대***’, ‘넥*****’으로만 공개했다. 공정위는 자진신고자 보호 차원에서 피심인 기업이름을 익명 처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결서에 공개된 주소와 다른 전선 담합 사건 의결서를 참조하면 실제 기업명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자영업자나 알려지지 않은 작은 기업은 대부분 실명을 공개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진신고자 보호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2007년 8월 의결한 CJ㈜, 대한제분, 삼양사의 설탕 제조·판매 담합사건에서 공정위는 자진신고자를 보호한다면서 의결서에 A사로 표기했다. 이어 “자진신고자 A사는 고발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밝히면서 대한제분과 삼양사만 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자진신고를 한 기업이 누구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정부 공식문서인 의결서에 기업명이 제각각 표시되는 것도 문제다. 법인명은 등기부등본에 표시된 이름을 따라야 하는데도 사건마다 기업명 표시는 중구난방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3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담합사건 등 사건에서는 피심인을 ‘LG전자’라고 썼지만 다른 10여개 사건에서는 ‘엘지전자’라고 다르게 표기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