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돌아갈래”… 장난감 갖고 노는 어른 ‘키덜트’ 부쩍
입력 2013-07-03 18:13 수정 2013-07-03 18:24
서울 흑석동에 사는 직장인 서모(32)씨는 퇴근하자마자 책상 서랍에 넣어둔 레고 블록과 로봇 프라모델을 꺼내 조립한다. 최근 생긴 취미다. 서씨는 “가중되는 업무, 부모님의 결혼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어릴 적 갖고 놀던 것과 비슷한 장난감을 만지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서씨가 장난감 구입에 쓰는 돈은 한 달 평균 70만∼100만원이나 된다. 서씨는 “현재 나에게 안정을 주는 것은 장난감이 유일하기 때문에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유년시절 즐기던 장난감 등에 향수를 느껴 이를 다시 찾는 성인, 이른바 ‘키덜트(Kid+Adult)족’이 늘고 있다. 5월 14일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열린 장난감 브랜드 ‘킨키로봇’ 이벤트에는 2시간 만에 키덜트 100여명이 몰려 1000만원 상당의 장난감들을 사갔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갤러리아백화점은 지난달 1일 본격적인 키덜트 장난감 브랜드 ‘레프리카’ 매장을 새로 열었다. 피규어, 모형자동차, 프라모델 등을 파는 이 매장에는 하루 평균 100명 이상 ‘어른’ 고객이 찾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3일 “주 고객은 30∼40대 남성으로 주말에는 주로 키덜트 동호회가 단체로 방문한다”고 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키덜트s’ ‘키덜트 소굴’ 등 키덜트 동호회가 300개 이상 검색된다. 회원은 1만명에서 많게는 5만명이 넘는 곳도 있다. 주로 20대 후반∼30대 회원이 많고 40대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제품을 사고팔거나 장난감 정보를 공유하고 오프라인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키덜트족은 한때 ‘미성숙한 어른’ ‘정신적 퇴행’이라 불리며 부정적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강력한 소비주체로 떠올랐다. 키덜트족을 위한 장난감시장 규모는 연간 5000억원대로 추산되며 매년 20∼30%씩 성장하고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키덜트에게 장난감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무 걱정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심리적 기구”라고 설명했다. 부산대 사회학과 김문겸 교수는 “경기불황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린시절 놀이문화에 대한 회귀본능이 커지면서 키덜트 문화가 확산됐고 최근에는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난감을 통한 ‘재테크’가 가능해진 것도 키덜트족이 증가한 원인 중 하나다. 인기 제품이나 한정판은 중고시장에서 원가보다 많게는 10배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직장인 한모(36)씨는 2004년 한정판으로 출시된 10만원짜리 ‘레고 스타워즈 시리즈 10134’ 제품을 최근 중고품 사이트에서 120만원에 팔았다고 했다.
인터넷 경매사이트 관계자는 “한정판이나 인기 제품이 단종되면 30%에서 많게는 배 가까이 프리미엄이 붙지만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라며 “남들이 갖지 않은 것을 가졌다는 생각이 거래를 부추기는 요소”라고 말했다.
글·사진=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