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이철우] 미국에서의 위안부 이슈와 일본 외교

입력 2013-07-03 17:51 수정 2013-07-03 19:10


“내정간섭이 금기인 미국 자치단체에 압력 넣은 일본… 스스로 무덤 판 꼴”

2009년 이스라엘 방문 중 예루살렘 경찰국본부 지휘통제본부를 방문했다. 뉴욕시경에서 제공한 모니터링시스템은 인종갈등이 첨예한 예루살렘시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범죄를 예방하고, 사고가 발생할 때 신속히 경찰력을 투입시켜 사태가 커지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다.

통제본부 담당자는 유대인 청년 두 명이 돼지피를 양동이에 담아 이슬람 황금사원 위에 뿌리려는 것을 미리 적발했던 사건을 말해줬다. 만약 그 사건을 막지 못했다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것이라고도 했다. 이슬람세계에서 모스크에 돼지피를 뿌리는 것은 엄청난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외교는 상대국의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전통, 사회적 규범·가치를 존중해 대화의 창을 열고 인식의 차이를 좁히면서 설득하고 소통을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국에서 금기시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게 가장 기초적인 규범이다.

그런데 일본 외교관은 미국에서 위안부 이슈를 놓고 매우 어리석은 잘못을 저질렀다. 미국은 열린사회 같지만 외국의 내정간섭은 금기시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정한 결정을 외국 외교관이나 의원이 번복시키려는 행위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2010년 10월 뉴저지주 팰리사이드 파크란 작은 동네의 도서관 옆에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는 설치될 당시만 해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년이 넘도록 조경도 못해 누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2012년 5월 일본 뉴욕총영사가 팰리사이드파크시를 방문해 시장과 시의원들을 만나 투자와 도서관 자금지원을 약속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는 자금지원 등의 대가로 위안부 기림비를 제거해달라는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당시 아무 조건 없이 도왔다면 일본은 팰리사이드파크 시민들의 인심을 얻었을 것이고, 나중에 위안부 기림비가 자연스럽게 철거됐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외교적 감각이 부족한 일본총영사의 어리석음은 시 당국자를 매우 화나게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뒤이은 일본 자민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은 기름에 불을 지르듯 문제를 더욱 확대시켰다.

당시까지만 해도 위안부 이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미주 한인사회도 똘똘 뭉쳤다. 한 달도 못 돼 뉴욕의 현충원에 제2의 기림비가 세워졌고, 전체 미국으로 퍼졌다. 미주 한인들의 설득으로 미국 주류사회가 위안부 이슈를 새롭게 인식하게 됐고, 기림비가 곳곳에 설치됐다. ‘위안부 결의안’이 뉴욕주 상·하원을 통과한 뒤에는 뉴저지주 상·하원, 일리노이주 하원, 버지니아 카운티 등으로 계속 번져가고 있다.

미국에서 보면 일본 외교는 후진국 수준으로 보인다. 뭐가 중요한지, 뭐가 금기인지, 뭐를 하고 또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의 위안부 문제는 일본 외교가 스스로 망쳐놓은 느낌이다.

게다가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아베 신조 총리 등의 망언 등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미국 주류사회가 위안부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위안부 문제는 아무리 일본이 이런저런 자료를 들먹이며 반론을 제기해도 이미 결론이 난 사항이다. 연방의회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정된 사항을 뒤집으려는 것은 연방의회 자체를 무시하는 행위다.

보편적 인권과 여성의 권위에 반해 저지른 범죄행위를 감싸려는 일본인들의 행위는 문명화되지 못한 것으로 비쳐질 뿐이다. 차라리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이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설득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한심할 뿐이다.

일본 외교관에 비해서 대한민국 외교관의 수준은 훨씬 높아 보인다. 단지 본국에서 일본처럼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지 못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느낌이다. 외교도 중요한 투자다. 만약 주요국가 외교관에게 더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공관은 재미 한인사회와 긴밀히 협조한다면 미국에서의 대한민국의 외교는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이철우 뉴욕주 경제개발부 통상교섭관·한미공공정책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