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병원을 옮길 때 챙겨야 할 것
입력 2013-07-03 17:50
평소 개인적으로 통화할 일이 한 번도 없었던 외가 쪽 먼 친척이 얼마 전 갑자기 나를 찾았다. 충청도 지방의 한 종합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자신의 처남을 봐줄 의사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환자는 말기신부전증 합병증과 뇌출혈 후유증으로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병원에서도 이미 가족에게 임종 준비를 하라고 통보한 상태였다.
전후사정을 들어본 결과 환자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서울의 큰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려는 그를 말렸다.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고통만 더 가중시키는 행위일 수 있다고 설득했다.
살다 보면 A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집에서 가까운 B병원으로, 혹은 집에서 멀긴 하지만 아주 큰 C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맘 편하게 더 나은 치료를 받기 위해 같은 병원 안에서 주치의를 바꾸고 싶은 경우도 생긴다.
과연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환자를 보내고 받는 두 병원 또는 두 의사 간 협조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현재 환자의 상태를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은 필수적이다. 그래야 치료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료의뢰서(전원의뢰서)를 뗄 때는 환자의 의료기록과 각종 영상검사결과 사본도 같이 떼도록 한다. 참고로 의료기록은 의료법에 의해 환자 본인 외에 열람이 금지돼 있다는 것도 알아두자. 의료기록 사본 발급 신청 시 환자 본인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만약 환자가 움직일 수 없는 처지여서 가족 등 보호자가 대리 신청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위임장을 준비해야 한다.
응급실 경유 만능주의 사고는 버려야 한다. 응급실만 통하면 무조건 입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강원도 원주시의 한 종합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위험한 고비를 넘긴 뒤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던 70대 중반 노인 환자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보호자 임의로 퇴원한 지 하루 만에 사망해 문제가 됐다.
사고 원인은 환자의 큰아들이 제공했다. 더 좋은 환경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가면 더 빨리 나을 것이라 생각한 아들이 소위 ‘응급실 경유 만사형통’ 병에 걸린 것이다. 그는 전원을 극구 말리는 의료진에게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 이름을 대며 응급실을 통해 바로 입원할 수 있게 다 얘기가 돼 있노라고 큰소리를 쳤다.
하지만 웬걸? 환자는 그 다음 날 앰뷸런스를 타고 첫 진료 병원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얘기가 돼 있다던 큰 병원의 응급실이 초만원 상태여서 침대에 한번 눕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대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환자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말았다.
위중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길 때는 반드시 병상에 여유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현재 치료받고 있는 의료진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응급실은 자기가 원하는 병원에 빨리 입원하는 데 필요한 지름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위급한 환자에게 긴급구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주치의를 바꾸고 싶은데 병원 측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끙끙 속만 끓이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가끔 본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하려니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같이 미안하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병을 고치자고 더 마음에 드는 의사를 찾는 게 아닌가. 더 편한 곳에서 더 좋은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옮기고, 의사를 바꾸겠다는데 말릴 사람은 국내 어디에도 없다. 현재의 주치의가 싫어져서 바꾸고 싶을 때는 병원 측에 당당하게 요구해도 된다. 의료법은 자신이 치료받고 싶은 병원과 의사를 선택하는 권한을 환자가 누려야 할 기본권과 같이 보장하고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