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섬에 슬픔과 불행은 두고 가세요” 여수 하화도로 떠나는 꽃섬길 트레킹

입력 2013-07-03 17:37 수정 2013-07-03 17:38


“이건 비밀인데요. 꽃섬에 가면요, 모든 슬픔과 불행을 다 잊을 수 있대요.” 육지의 삶으로부터 밀려나고 버림받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세 여자는 모든 슬픔을 잊게 해준다는 꽃섬을 향해 여행을 떠난다. 송일곤 감독의 영화 ‘꽃섬’에서 세 여자가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꿈꾸며 도착한 꽃섬은 다름 아닌 전남 여수 앞바다의 하화도이다.

여수시 화정면의 하화도는 여수 앞바다에 보석처럼 흩뿌려진 365개 섬 중 하나다.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사도를 비롯해 낭도 개도 백야도 등 하화도를 둘러싼 섬들의 유명세 때문에 비교적 덜 알려진 작은 섬이다. 하지만 최근 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5.7㎞ 길이의 꽃섬길이 탄생하면서 트레킹을 즐기는 여행객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하화도행 여객선은 여수여객선터미널(061-662-5454)과 백야도 선착장(061-686-6655)에서 하루 서너 차례 출발한다.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1시간10분, 백야도 선착장에서 30분 걸린다. 배멀미를 하는 여행객들은 여수여객선터미널보다는 여수반도와 연륙교로 연결된 백야도까지 승용차로 이동한 후 여객선을 타는 게 낫다.

섬들에 둘러싸여 호수처럼 잔잔한 다도해를 미끄러지면 이내 하화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화도(花島)는 꽃섬을 한자로 표기한 이름으로 웃꽃섬인 상화도(上花島)와 아래꽃섬인 하화도(下花島)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다정한 연인처럼 마주보고 있다.

섬의 모양이 복조리나 하이힐을 닮은 하화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임진왜란이 일어난 조선 선조 25년(1592). 가족과 함께 뗏목을 타고 피란을 가던 인동 장씨가 동백꽃과 진달래가 만발한 하화도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한다. 일설에는 이순신 장군이 전선(戰船)을 타고 지나가다 꽃이 활짝 핀 아름다운 섬이라 하여 화도로 명명했다고 전한다.

하화도 주민은 25가구 28명으로 대부분 홀로 사는 노인들이다. 한때 고기잡이로 부자섬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젠 젊은이가 없어 어업은 사양길이다. 대신 주민들은 산에서 자생하는 소불(부추)을 채취해 한 해 200만∼3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 하화도의 소불은 맛과 향이 뛰어나 육지 사람들에게 인기.

하화도를 한 바퀴 도는 꽃섬길은 비경의 연속이다. 파도소리조차 숨을 죽인 호젓한 해안길을 따라가면 철따라 형형색색의 꽃이 피고 지는 애림민야생화공원이 나온다. 철 이른 코스모스가 해맑은 웃음을 짓는 야생화공원에서 300m를 올라가면 ‘순넘밭넘 구절초공원’. 잡초가 무릎 깊이로 자란 꽃섬길에는 온갖 야생화들이 피어 여행객을 반긴다.

‘순넘밭넘’은 옛날에 ‘순’이라는 사람의 밭이 있던 곳이라는 뜻으로 ‘넘’은 작은 고개를 말한다. 섬모초로 불리는 연보랏빛 구절초가 피기 시작한 꽃밭에서 큰산전망대까지는 400m. 큰산은 하화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발 아래에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해안선이 길게 펼쳐진다.

하화도에는 재미있는 지명이 많다. 큰산전망대에서 300m 거리에 위치한 깻넘전망대의 ‘깻넘’은 깨를 심었던 밭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작은 고개라는 뜻이고, 막산전망대의 ‘막산’은 섬의 끝부분에 위치한 마지막 산이라는 의미이다. 목재 데크로 이루어진 큰산전망대와 깻넘전망대는 개도, 제도, 백야도, 금오도 등 다도해의 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포인트로 고흥 외나로도의 나로우주센터도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하화도 최고의 비경은 깻넘전망대와 막산전망대 사이에 위치한 큰굴. 깎아지른 절벽과 절벽 사이로 파도가 들락거리고 절벽 아래에는 커다란 동굴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예전에 밀수꾼들이 밀수품을 숨겨놓았다는 큰굴은 절벽을 타고 내려갈 수도 없고 배를 타고 접근하기에도 위험하지만 깎아지른 절벽을 샛노랗게 수놓은 원추리 꽃이 어서 내려오라고 유혹한다.

주황색 지붕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댄 하화도에는 사철 지지 않는 꽃도 있다. 금이 가고 울퉁불퉁한 벽에 그려진 꽃이 그 주인공이다. 몇 해 전 봉사활동을 온 대학생들이 그렸다는 벽화는 영화 ‘꽃섬’에서 슬픔과 불행을 잊기 위해 하화도를 찾은 세 여자처럼 다도해의 파라다이스를 찾아 나선 여행객들의 가슴에 꿈과 희망을 새겨준다.

여수=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