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 결산]의장성명에 北 주장 한줄도 없어

입력 2013-07-02 19:45 수정 2013-07-03 01:15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26개 회원국은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주변국과의 기존 합의를 깨버린 북한을 향해 국제 의무를 준수하라고 거듭 압박했다. ARF 의장 성명에는 북한만이 동의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핵개발은 전부 미국책임”이라는 북한 주장은 완전히 배제됐다. 남북과 미·중·일·러 등 북핵 6자회담 당사국이 모두 모여 ‘비공식 6자회담’이라고 불린 ARF는 향후 비핵화 대화까지 아직 멀고 먼 길이 남아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ARF 폐막 직전에 삭제된 북한 주장

ARF 의장국인 브루나이가 회원국 총의를 모아 채택한 의장성명에는 북측 주장이 한 줄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만큼 대북 압박이 거셌다는 의미다. 사전에 배포된 의장성명 초안에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핵 문제와 한반도 긴장 악화의 근원’이라는 북측 주장이 들어있었지만, 성명 채택 직전 우리 정부의 집요한 노력으로 삭제됐다. 중국 역시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회의 분위기는 26대 1(북한)의 구도였다”고 했다. 성명은 또 최근 라오스 탈북청소년 사태를 의식한 듯 “국제사회의 인도적 우려를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의장성명에 탈북자 관련 언급이 포함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모든 책임 미국에 돌린 북한

북한 대표단은 반다르스리브가완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ARF 본회의 직후 입장을 발표했다. 최명남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한반도 긴장 고조의 모든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핵 개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며, 이는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끝날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조선(북한)만의 비핵화’는 있을 수 없다고 해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더욱이 한·미·일이 이행을 강력 촉구해온 6자회담 9·19공동성명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폄하한 것은 향후 핵 문제 해결 기대를 더욱 어둡게 하는 대목이다. 북측은 대북 에너지 지원, 전력 공급,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등이 이행되지 않고 있음만 강조해 근본적인 터닝포인트가 없는 한 비핵화 대화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은 남북대화에 대해서도 “꼬물만큼도 미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미·일의 중국 끌어들이기

한·미·일 3국은 ‘북핵 불용’ 원칙을 거듭 천명하면서 중국을 3국 공조 대열에 적극 끌어들이려는 모습을 보였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찰떡 공조’를 북한은 물론 국제사회에도 과시했다. 3국 외교수장이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우선 북한이 변해야 하고, 북한이 변한다면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며, 북한의 태도 변화에 중국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미·일과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데도 공감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전날 “북한 미래에 비핵화가 포함돼 있다는 점에 우리 4개국(한·미·일·중) 입장이 완전히 일치됐다”고 강조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반다르스리브가완(브루나이)=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