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 국제 미아 신세로… 러시아 망명 하루만에 철회

입력 2013-07-02 18:48 수정 2013-07-02 22:54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 수집을 폭로한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러시아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는 등 최종 행선지가 여전히 안갯속에 묻혀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공보실장은 2일 “스노든이 러시아에 남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밝힌 조건을 듣고 요청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스노든을 사형 제도가 적용되는 미국과 같은 나라에 넘겨주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전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가스수출국 포럼’ 정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스노든 신병처리에 대해 “그가 이곳에 남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미국 파트너에게 해를 끼치는 데 초점을 맞춘 활동을 중단한다는 한 가지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말했다. 즉 추가 폭로로 미국에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굳이 스노든의 망명을 허용해 대미 관계가 악화되는 정치적 부담까지 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위키리크스는 1일 러시아 외에도 중국 인도 호주 볼리비아 브라질 쿠바 핀란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네덜란드 니카라과 노르웨이 폴란드 스페인 스위스 베네수엘라 등 19개 국가에 망명을 요청한 상태라고 전했다.

스노든이 러시아 망명을 철회했으나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냉전은 끝났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중국과 함께 미국의 최대 적국이다. 그러지 않아도 미국 일각에서 그는 ‘반역자’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 망명 의사를 밝힌 것은 처지가 절박해졌음을 암시한다.

당초 목적지인 에콰도르는 미국의 강한 압박에 사실상 그의 망명을 거절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이날 “기회는 열려 있다”면서도 스노든이 에콰도르 영토에 들어와야 망명 허용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해 비자가 취소된 스노든으로서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세웠다. 고립된 스노든으로서는 러시아 망명 카드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궁지로 몰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스노든은 처지가 더욱 어려워짐에 따라 계속 추가 폭로를 이어갈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 정보당국은 스노든에 이어 추가 폭로자가 나올 가능성에도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유타주에 인터넷 및 전화감청 데이터를 통째로 저장하는 시설을 건설하는 등 개인정보 수집 인프라를 강화해온 미 정보당국은 최근 수년간 수천명의 인력을 충원했는데, 이들 중 스노든의 주장에 공감하는 이가 나올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스노든의 폭로에 크게 놀란 유럽연합(EU)은 전 세계 EU 관련 기관과 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보안점검을 실시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이 보안 관련 부서에 전면적인 정보 보안 점검을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이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