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金 대화록 원본 공개] 여는 판도라 상자… 명백한 ‘포기’ 없으면 무승부 가능성

입력 2013-07-02 18:09 수정 2013-07-02 23:29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이 보관 중인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원본과 녹음파일 등에 대한 자료제출요구서가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국가정보원이 지난달 24일 공개한 대화록의 진위가 가려지게 됐다. 그러나 여야는 일반 공개 범위를 놓고 또 다시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어디까지 공개할까

여야가 국가기록원에 열람 및 사본 제출을 요구한 자료는 정상회담 대화록과 녹음파일 등 회담 자료 일체와 정상회담 사전·사후 회의록, 보고서 등 부속 자료를 포괄한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이 어느 수준까지 응할지는 미지수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열람, 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을 허용한다’고 돼 있다. 열람 대상과 주체·장소·방식·기간 등을 놓고 국회와 국가기록원이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의원들이 자료를 열람한 뒤 어디까지 일반 국민에게 공개할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일반 공개는 불법이다. 하지만 민주당 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의원이 보고 와서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했다. 본회의장 발언 등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활용한 우회적 공개가 거론된다.

정치권은 일반 공개 범위를 놓고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정상회담 사전·사후 회의록, 각종 보고서 등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려고 했다는 점을 증명한다는 복안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 공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육성이 공개되면 부적절하고 굴욕적으로 협상에 임한 사실 등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NLL 발언 외에 새누리당이 비판하고 있는 북한 핵보유, 주한미군 재배치, 작계 5029, 반미 논란 등에 관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될지도 주목된다.

진위 논란 종지부 찍을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과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말을 종합하면 국가기록원 원본은 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0월에 만들어졌다. 반면 국정원 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인 2008년 1월 생산됐다. 또 국정원이 가진 발췌본이 만들어진 것은 대화록이 1급 기밀에서 2급 기밀로 분류된 2009년 3월 이후로 추정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취임했다. 때문에 민주당은 정권이 바뀐 다음에 ‘불순한 의도’로 만들어진 국정원 자료를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나’라고 말한 부분이 발췌본에는 ‘저’로, ‘김정일 위원장’이라고 말한 부분도 ‘김정일 위원장님’으로 기록돼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본회의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원본을 갖고 논쟁하는 것과 아닐 수도 있는 것으로 논쟁하는 것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발췌본 짜깁기 의혹이 제기되고 기록된 단어가 일부 차이가 나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국정원 사본과 국가기록원 원본이 내용상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 지도부도 이러한 판단을 내리고 원본 공개에 동의한 측면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자료에 “NLL을 포기한다” 또는 “NLL을 반드시 지킨다”고 명확히 밝힌 대목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엄기영 임성수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