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사관 도청 당하고도 아무 소리 못하는 외교부
입력 2013-07-02 17:52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우방국에 대해 불법적인 정보수집 행위를 했다고 폭로된 것도 충격이지만 이에 대해 아무 소리 못하는 우리 정부의 저자세 외교에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보도가 정상적인 경로가 아닌 폭로에 의해 나온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에 대해 최소한의 진상 설명 정도는 즉각 요구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 등이 곧바로 미국에 조사를 요구하거나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는 등 거세게 반발한 반면 한국 정부는 공식 반응조차 내놓지 않아 실망감을 안겨줬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부터 입수한 NSA의 일급비밀 문건에 따르면 NSA는 한국을 포함한 38개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을 ‘표적(target)’으로 지정하고 도청과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정보수집 등 염탐을 했다. 38개국 리스트에는 적대국으로 여겨지는 나라나 중동지역 국가뿐 아니라 미국의 우방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의 불법적인 도청과 스파이 행위가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인 ‘테러와의 전쟁’ 차원을 넘어서 이뤄져 왔음이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미국 정부는 테러범 색출 등 국가 안보를 위한 것으로 외국정보감시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나아가 “다른 나라가 수집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외국 정보를 수집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미국만 부도덕한 국가로 매도되는 것이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는 지구촌을 리드하는 국가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이제라도 깨끗하게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이 큰 나라다운 행동이다.
유럽 각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즉각 반발하며 대응에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EU는 신속하고 단호하게 미국 측에 해명을 요구하면서 아울러 사실 관계 확인 작업을 하는 등 외교적 압박에 나서고 독일은 법적 대응까지 준비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도 진위 확인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상황이다.
여론이 들끓자 우리 정부는 뒤늦게 미국 정부에 외교채널을 통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다. 미국 눈치를 보며 공식입장조차 내놓지 않다가 등 떠밀려 마지못해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불법 행위에 대해 소신을 갖고 따질 것은 따지는 게 마땅하다. 불법 행위에 대응하지 않는 국가는 국제적으로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미국 정부에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고 사실로 밝혀질 경우 진정한 반성과 사과는 물론 재발 방지책 등을 받아둘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재외공관의 도·감청을 막기 위한 자체 보안 강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