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장마

입력 2013-07-02 19:14 수정 2013-07-02 22:32

장마는 한자어 ‘長’과 비를 뜻하는 우리말 ‘마ㅎ’가 합쳐진 조어다. 고유어는 ‘오란비’로 1527년 한자교습서 훈몽자회에 장마를 뜻하는 ‘霖’자를 ‘오란비 림’으로 풀이하고 있다. 기상청이 발간한 장마백서에 따르면 오란비는 1500년대 중반 이후부터 ‘괽마’로 표현되다 ‘쟝마’를 거쳐 일제강점기 이후 ‘장마’로 변했다.

1973년 문예지 ‘문학과 지성’ 봄호에 발표된 윤흥길의 중편소설 ‘장마’는 6·25전쟁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전쟁 때문에 전라도 한집에 살게 된 사돈집 사이의 갈등과 화해가 주제다. 소설 속 화자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원래 화목하게 지냈으나 굵은 장맛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외삼촌의 전사 통보를 계기로 갈등으로 치닫는다. 의용군 징집을 피해 숨어 지내다 국군 소위로 입대한 외삼촌의 사망 소식에 외할머니는 뽈갱이(빨갱이)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이를 들은 할머니는 빨치산이 된 삼촌을 겨냥한 것이라며 노발대발한다.

빨치산 소탕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지만 할머니는 아들이 생환할 것이라는 소경 점쟁이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나 삼촌은 오지 않고 대신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나타나자 할머니는 졸도한다. 외할머니는 삼촌의 넋이 찾아온 것이라며 천도제를 지내 구렁이를 보내준다. 이후 사돈과 화해한 할머니는 얼마 뒤 숨을 거두고 장마가 그친다.

장마는 전쟁으로 벌어진 혼란을 상징한다. 온난다습한 남쪽 기단과 한랭한 북쪽 기단의 충돌이 장마의 원인이듯, 친삼촌과 외삼촌이 걸어간 다른 길은 전란의 원인이다. 소설은 이런 갈등이 모성을 통해, 그리고 외래 이데올로기가 전통적 샤머니즘을 매개로 극복되는 과정을 제시한다.

염상섭의 ‘취우(驟雨)’도 6·25전쟁을 비에 빗댄 소설이다. 전쟁 발발부터 9·28 수복까지 서울을 배경으로 전쟁통을 살아가려 발버둥치는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취우는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다. ‘장마’가 오랜 전란과 긴 이념의 갈등을 그렸다면 ‘취우’는 전쟁을 끈질긴 삶에 비해 잠시 지나가는 소낙비로 형상화했다.

본격적인 장마와 함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국정조사가 시작됐다. 국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된 뒤에도 의제와 인선 등을 둘러싸고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도 그칠 기미가 없다. 국정조사는 한 달 보름이나 진행된다. 두 할머니와 달리 함께 잃은 건 없고 각자 얻을 것만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장마보다 지루한 정쟁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