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초심으로 돌아가자

입력 2013-07-02 17:55 수정 2013-07-02 19:12


정말이지 시끄럽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각종 사건·사고와 스캔들, 정치권 대치 등으로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거의 없다. 외국 언론매체에 해외토픽으로 실릴 법한 창피한 일들도 종종 벌어진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우리나라와 국민들이 국제사회로부터 경제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파문으로 다소 희석됐지만,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이라는 구태는 국제적 망신거리다. 군사독재정권 시절도 아닌데, 최고 정보기관이 버젓이 정치에 간여하는 국가가 또 있을까. 당시 국정원장이라는 사람이 2008년의 촛불집회 사태 트라우마로 인해 종북좌파 세력에 대한 대응을 지시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검찰의 결론에 다다르면 절로 코웃음이 나오게 된다. 국정원장에 임명될 때부터 자질 논란이 없지 않았으나 저런 수준이었는지는 몰랐다. 국정원이 검찰로부터 8년 만에 압수수색이라는 치욕을 당해도 동정을 받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다. 더욱이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또 한 차례 몰매를 맞아야 할 처지다.

국정원 사건만큼이나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 원전 비리다. “천인공노할 중대한 범죄”라는 정홍원 총리의 말이 딱 맞다. 원전은 부품 하나만 잘못 끼워져도 국가적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11 대지진 때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로 지금도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누구보다 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오랜 기간 원전 부품의 시험성적서나 품질검증서가 위조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지탄받아 마땅하다. 불량 부품 사용을 승인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 부장 집에서 얼마 전 억대의 현금뭉치가 발견됐다. 앞서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한수원의 간부 20여명이 조직적으로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원전 부품 검증업체 관계자들도 최근 구속됐다. 심하게 얘기하면, 자신의 가족과 수많은 이웃들이 살아가는 이 나라가 방사능으로 오염되든 말든 전문지식을 악용해 잇속만 챙기면 그만이라는 식 아닌가. 사법기관을 총동원해 전문가입네 하면서 검은돈을 받아가며 국가 기간시설을 엉망으로 만들어 국민 안전을 위협한 자들을 단죄해야 한다.

국제중학교의 ‘뒷돈 입학’ 의혹도 심각하다.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고 조기 유학의 폐단을 없앤다는 등의 명분으로 세워진 국제중학교가 특목고 진학의 통로로 변질되면서 입학을 둘러싼 비리와 편법이 지속돼 왔다는 게 밝혀진 탓이다. 1만원권 지폐로 2000만원을 종이봉투에 담아 학교에 전달했는데, 학교에서 현찰을 요구한 이유가 ‘윗분’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등의 폭로까지 나왔다. 급기야 입학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학부모들로부터 돈을 받고 성적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영훈국제중 이사장이 사법처리됐다. 국제중학교 존폐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밖에 수백억원대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CJ그룹 회장, 관음증에 빠진 지도층 인사들의 일탈, 층간소음 문제로 위층 주민의 자동차 열쇠 구멍에 접착제를 발라 잠금장치를 망가뜨린 판사 등 민망한 일들이 매일매일 터져 나오고 있다.

왜들 이러는 걸까. 처음의 마음가짐, 즉 초심을 잊어서일 듯하다. 정권 안보에 주력한 국정원, 국민 안전을 도외시하고 뒷주머니를 채운 원전 관계자들, 학생들을 부정입학시킨 국제중 관계자의 공통점은 본연의 임무를 망각했다는 것이다.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면 초심을 유지해야 한다. 초심을 유지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심을 잃는 순간 사리사욕에 빠져 개인이 추락하는 것은 물론 조직과 사회에도 상처를 남기게 된다. 사회 지도층부터 우리 모두 초심으로 돌아가자. 가끔 초심을 되새기자. 그러다 보면 어느 틈엔가 멋진 대한민국이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물망초심(勿忘初心)!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