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상임] 가슴으로 대화하자

입력 2013-07-02 17:52


며칠 전 대학원 여름 특강을 듣고서 후배와 교정을 거닐다가 미술작품 하나를 보게 되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세워진 고래 형상인데 머리와 꼬리만 있고 몸뚱이는 없었다. 머리 쪽에 심어놓은 나무는 마치 고래가 물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후배가 이 작품을 본 소감을 물었을 때 나는 거침없이 “아이디어가 신선하다. 바다에서 노니는 고래가 연상된다. 나무로 물을 뿜는 모양을 표현한 게 재미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후배는 고래가 힘들어 보인다며 “바다로 데려다주고 싶다. 콘크리트에 묶여 있는 걸 보니 예전에 답답했던 내가 떠올라 한숨이 나온다. 고래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고 했다.

후배는 고래와 교감하고 있는데 나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바라보기만 한 것이다. 조형물 속 고래의 마음까지 읽어주는 그 후배가 참 따뜻해 보였다. 그러면서 고래의 갑갑함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후배와 같이 고래를 바다로 데려다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후배와 나눈 고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내가 여전히 옛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좀 무거웠다. 전문 코치로 나서면서 25년간 조직생활에서 익숙해진 딱딱함을 극복하려고 관점을 달리하는 시도도 해 보았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어려워 감정언어 공부도 했다.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훈련도 수없이 해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머리로 생각하고 해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갑갑한 마음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부모 자식, 선후배, 상사 부하, 고객 등 헤아릴 수 없는 관계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나’ 중심으로 생각하고 대하면 상대방은 튕겨져 나가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감정과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면 피상적인 이야기만 한다. 앞으로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 입장에서 더 많이 생각하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다가가는 노력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머리로 해석하고 판단하기보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상대를 감싸 안아주고 그 안에서 숨 쉬는 감정과 가치를 알아주기 위해 애쓸 계획이다. 내가 알아주면 상대는 어느새 마음을 활짝 열고 가슴속에 꽁꽁 숨겨 두었던 아픔을 털어놓게 되고, 서로가 시원한 소통을 하게 될 것이다. 콘크리트 위의 고래를 생각하며 가슴으로 대화하는 연습을 더 많이 해보아야겠다.

김상임 (기업전문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