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저 왔어요! 아픈데는”… 동병상련 ‘노인 돕는 노인’
입력 2013-07-02 18:47 수정 2013-07-02 19:11
‘老老케어’로 삶의 활력 한순자 할머니
“어르신! 저 왔어요!”
마른장마 중에 찾아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7일 오후,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면서 소리를 지르는 한순자(74·서울 신내 2동)씨. 조용하던 김상수(가명·84·서울 면목동)씨 집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아이고, 식사 중이시네요. 점심이 늦어지셨어요. 좀 일찍 올걸 그랬네요. 오늘 반찬 아주 맛있어요.”
반찬이 든 도시락을 꺼내면서도 쉴 새 없이 펼치는 한씨의 수다에 김씨 부부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김씨의 아내 박영자(가명·80)씨는 앓아누운 지 꽤 오래 됐다. 요즘은 김씨도 다리가 아파 거동이 힘들다고 했다. 한씨는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박씨를 위해 성인용 기저귀까지 챙겨 와 건넸다.
김씨는 “내가 하기 어려운 반찬을 이 양반이 이렇게 때맞춰 갖다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씨는 “시원하게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고 잡았지만 한씨는 손사래를 치면서 계단을 내려왔다. “층계가 이렇게 가파르니 다리 불편한 분들이 고생”이라면서.
김씨 집에서 5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박순분(79)씨 집을 찾은 한씨는 또다시 목청을 돋웠다. “형님! 잘 지내셨어요?” 한씨의 소리에 문을 연 박씨는 피붙이를 맞듯 얼굴 한가득 웃음꽃이 피어났다. “형아!허리는 좀 괜찮아요?” 안부를 챙긴 한씨는 반찬과 함께 비타민을 내놓는다. 방안과 주방을 휘둘러보던 한씨는 현관 앞에 있는 검은 비닐봉투를 덥썩 들었다. 박씨는“그거 쓰레기 아냐. 그냥 둬!”라면서 웃었다. 허리가 아파 물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박씨를 위해 한씨는 생수, 휴지, 양념 같은 것들을 사다주고, 음식물 쓰레기나 폐지 등을 갖다 버린단다. 박씨는 “예전에 젊은이들이 반찬을 가져다 줄 때는 공연히 눈치를 보게 돼 아무 것도 부탁하지 않았었다”고 털어놓는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이니 내 마음을 잘 이해해줘 속얘기도 나누곤 한다”면서 박씨는 한씨의 손을 꼭 잡았다.
한씨는 “복지관에서 해주는 반찬을 갖다 드리는 것뿐인데 모두들 내게 ‘고맙다’고 해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면서 캐리어를 끌고 재바른 걸음으로 다음 집으로 향했다.
한씨는 서울중랑노인종합복지관이 ‘행복드림’ 돌보미파견사업의 하나로 펼치고 있는 ‘반찬 배달’ 일을 하고 있다. 매주 화·목요일 반찬을 배달한다는 그는 다섯 집을 돌다보면 네다섯 시간이나 걸린다고. 반찬만 전하고 나오면 두세 시간이면 너끈하지만 집집마다 참견(?)하느라고 시간이 더 걸린다는 한씨.
“나도 혼자 살아서 잘 알지. 독거노인들은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눌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가서 공연히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거지.”
독거노인들의 외롭고 고단한 생활을 잘 아는 그는 “복지관에서 나온 것들을 하나라도 더 챙겨주기 위해 떼를 쓰곤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캐리어에는 늘 종이기저귀, 비타민, 음식쓰레기 봉투 등이 반찬도시락과 함께 담겨 있다.
“일주일에 두 번씩 2시간 이상 걸으니 건강에 좋고, 무엇보다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 될 수 있어 기쁘고, 생활비까지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그가 이 일을 하고 받는 돈은 고작 20만원. 그것도 1년에 9개월밖에 안나오지만 기초노령연금으로 살아가는 그에게는 큰 보탬이 된다.
8년째 또래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그는 지난해까지는 1년에 7개월만 수당이 나왔지만 반찬 갖다 주기를 거른 적은 없다고 했다.
“반찬을 기다리는 이들이 눈에 밟혀서”란다. 한씨에게 반찬배달은 돈벌이가 3할이라면 외로운 노인들을 돕는다는 마음이 7할인 셈이다.
중랑노인종합복지관 하수현 부장은 “한순자 어머님이 하시는 일은 노인일자리사업 중 복지형으로, 불편한 노인을 노인이 돌보게 하는 ‘노노(老老)케어’”라고 소개했다. 하 부장은 “같은 또래 노인들은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단절감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독거노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 반응이 좋다”고 했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적으로 노노케어로 일자리를 얻는 노인은 3만4000여명이다. 노인종합복지관을 중심으로 전국 1214개 기관에서 노노케어 사업을 시행 중이며, 만65세 이상 기초노령연금수급자면 참여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 또는 주간에 돌볼 사람이 없는 저소득 노인들은 노노케어 시행기관에 신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04년 시작된 노노케어 사업은 동년배를 통한 노인 대상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노인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동년배들이 방문하게 되면 반찬 배달이나 가사도움은 물론 말벗도 되주기 때문에 젊은층이 하는 것보다 정서적 지원 효과가 커서 계속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