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벽에 ‘절전 성적표’… 50여 가구 팔 걷어
입력 2013-07-01 18:48 수정 2013-07-01 22:39
달걀, 솜사탕, 커피…. 평소엔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었지만 서울 국사봉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이 음식을 먹기 위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음식들을 만들기 위한 전력을 직접 만들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서울 상도동 ‘성대골’로 불리는 에너지 자립마을에서 ‘에너지 카’ 첫 실습수업이 열렸다. 1t 트럭을 개조해 태양열판 10개를 붙이고, 발전기 자전거를 연결해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구조다. 학생들은 이 차에 올라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돌렸다. 30초간 페달을 밟아야 솜사탕 1개를 먹을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페달을 밟는 아이들의 이마엔 금세 땀방울이 맺혔다.
자전거 손잡이 중앙에는 전력량을 바늘로 표시하는 계기판도 달려 있었다. 재밌는 ‘놀이’라고 생각한 학생들은 더 많은 솜사탕을 만들려고 힘껏 페달을 밟았다. 그러자 성대골 어린이도서관 김소영 관장은 “200W가 넘으면 모터가 과열되니 너무 세게 밟지 말라”고 안내했다.
전기포트를 이용하면 금방 먹을 수 있는 커피와 삶은 달걀은 태양열로 만들었다. 한 학생은 “전기 에너지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며 “전기 코드 뽑는 것부터 실천해 에너지를 아끼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1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에너지 절약 교육을 하고 있는 김 관장은 3년 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을 열었다. 이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전사고가 났다는 뉴스를 접한 뒤 마을 주민들과 함께 에너지 자립 마을에 대한 계획을 세우게 됐다. 단 한 명의 환경 전문가도 없었지만, 주민들이 매일 머리를 맞대며 에너지 절약 방안을 궁리했다.
도서관 한켠에는 에너지 절약 발전소인 ‘에너지 절전소’도 만들었다. 전기를 아껴 사용하면 절약한 만큼의 전기를 생산하는 효과가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벽면에는 ‘착한 에너지 지킴이’ 주민들이 자신의 월별 전기 사용량을 초록색 막대그래프로 표시한 ‘에너지 성적표’가 붙어있다. 전년 사용량인 빨간색 막대그래프보다 당연히 초록색 막대의 키는 작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오면 벽면에 딱 붙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느 집이 전기 사용량을 줄였는지 가리키며 비교해본다. 3가구로 시작한 절전 운동은 지난해 50여 가구로 확대돼 총 3만5000㎾h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 성대골 마을공동체 회원인 최경희(48·여)씨는 1일 “코드를 뽑으라고 남편이나 딸에게 잔소리를 하는 게 미안할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남편이 ‘퇴근할 때 모니터를 끄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에너지 절약 전도사가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유나 조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