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38개국 도청… 동맹국 韓·日도 당했다”

입력 2013-07-01 18:01 수정 2013-07-02 01:26

국익을 위해서는 동맹도 필요없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유럽연합(EU) 본부는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 등 38개국의 주미 대사관에도 도청과 해킹 등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EU와 미국의 관계에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U는 해킹 의혹에 대한 전면 조사를 예고하는 한편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EU 집행위원회는 전 세계 EU 기관과 시설물에 대해 철저한 보안 점검을 실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30일(현지시간) NSA가 한국 등 38개국 주미 대사관을 ‘표적’으로 지정해 도청과 사이버 공격으로 정보 수집을 감행했다고 에드워드 스노든의 문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2010년 9월 작성된 문건에는 NSA가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스 등을 비롯해 인도 멕시코 터키 한국 일본 등 대사관을 염탐한 것으로 돼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NSA가 채팅, 이메일, 파일 전송, 인터넷전화, 로그인, 메타데이터, 사진, 소셜네트워킹, 저장 데이터, 비디오, 화상회의 등 최소 11개 유형의 전자통신 정보를 수집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NSA가 EU 대사관에 있는 암호 팩스인 ‘크립토 팩스’에 장치를 심었다고 표현한 것으로 미뤄 암호 팩스에도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크립토 팩스는 각 대사관이 본국 외교부로 문서를 전송할 때 사용하는 암호화된 팩스다.

이와 별도로 슈피겔은 NSA가 독일을 주 대상으로 매달 5억건에 이르는 전화 통화 및 인터넷 이용 기록을 수집했다고 보도했다. 하루 최고 2000만건의 전화 통화와 1000만건의 인터넷 데이터 교환 기록이 NSA에 의해 수집됐다. 독일 연방검찰은 불법 도청과 감시 혐의 등으로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을 기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해킹 의혹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키로 했다. 비비안 레딩 EU 법무집행위원은 “우리의 협상 파트너가 도청했다는 의심이 있다면 FTA와 같은 시장 확대를 위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서부 로리앙 지역을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파트너와 동맹국 사이에서 이런 행동이 벌어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적인 중단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주미 한국 대사관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면서도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외교 경로를 통해 미국에 확인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NSA의 정보 수집이 외교 문제로 비화되자 조기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국가정보국(DNI)은 대변인 명의로 “미국은 이번 문제를 EU에 적절히 설명할 것”이라며 “미국은 다른 나라가 하는 정도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