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방열] 세계 평정한 한국 스포츠의 경쟁력

입력 2013-07-01 18:30


“대대로 이어져온 뛰어난 손재주 DNA를 각 분야에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골프와 양궁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스포츠 종목이다. 골프는 1990년대 박세리에 이어 1일 박인비가 LPGA 메이저 3연승과 시즌 6승을 기록하면서 세계 골프계를 놀라게 했다. 우리나라 여자골퍼들의 세계 제패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양궁에서는 1986년 김진호의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을 시작으로 88서울올림픽의 김수녕 그리고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기보배가 금메달을 이어가면서 부동의 왕좌를 30년 넘게 고수하고 있다. 그래서 이 두 종목은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면 바로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등식을 갖고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국제적 경쟁력을 갖도록 한 것인가. 과학적 훈련인가, 뛰어난 지도력인가, 아니면 그들이 사용하는 운동기구의 특성 때문인가. 해답은 따로 있다고 본다. 골프와 양궁은 손의 감각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스포츠다. 공을 칠 때와 화살을 시위에 걸고 쏘는 순간까지 손가락의 강약고저(强弱高低)와 전후좌우 감각이 뛰어나야 순간적인 정확도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감각은 우리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DNA다. 삼국시대부터 도자기를 제작해 온 탁월한 솜씨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흙을 빚고 손가락 끝 감각으로 다듬고 화덕에 넣어 만들어내는 도자기 기술. 그 손의 미감은 최첨단 과학 분야인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 NT(나노공학)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런던 시내 대영박물관 3층에 올라서면 세계 각국에서 생산된 도자기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잘 정돈된 도자기들이 진열돼 저마다 아름다움의 자웅을 겨루고 있다. 그런데 관람객들이 이동을 포기한 채 한 전시품만 바라보고 있었다. 뒤이어 모여든 사람들로 곧 인산을 이루었고 관람객들은 저마다 고개를 있는 대로 뺀 채 전시품을 보려고 발뒤꿈치까지 치켜세웠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였다.

바라보는 순간 “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모두들 넋을 잃었다. 나란히 놓여 있는 두 점의 청자와 백자는 도공의 혼이 살아 숨쉬고 있었고, 그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우아한 모습 그대로였다.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 중국자기보다, 입체적 멋을 내고 있는 독일자기보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색깔로 치장한 일본자기보다도 한 차원 높은 색채와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능가하는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명품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일찍부터 중국도자기를 뛰어넘는 세계화를 이룩했기 때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많은 문화재를 약탈하면서 아예 사람째 데려간 것은 유일하게 도자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이후에 고려청자의 맥이 끊기고 백자가 나타난 대신 일본에서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도자기 문화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일본의 가고시마 지방에는 우리 도공의 후예가 남아 있고, 그들이 일본에서 제일가는 도자기 명인들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메이지유신 이후 재빨리 자신들의 도자기 기술에다가 서양의 도자기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바그너 같은 도자기 기술자를 초빙해서 종래의 동양식 일색의 일본도자기에다 서양식 감각을 절충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서양 사람들이 쓰고 있는 접시나 찻잔이 대부분 일제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본식 세계화의 한 예다.

요즘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를 입버릇처럼 주장하고 있다. 왜 우리 조상이 도예 기술을 전해준 일본인들은 우리 노하우에다가 서양 노하우를 슬쩍 도용해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데 우리는 도자기 문화에서마저 지고 있는가. 우리는 남에게 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주고도 뒤처지는 원인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인의 뛰어난 손재주로 세계를 평정한 골프와 양궁의 경쟁력을 다른 분야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방열 전 건동대 총장·대한농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