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막스 피카르트 ‘인간과 말’
입력 2013-06-30 19:52
우리는 평생 누구와 동거하는 것일까. 아내나 남편 혹은 가족일까. 누군가는 마우스나 키보드 그리고 컴퓨터 화면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언어와 동거한다.’
독일 출신 작가 막스 피카르트(1888∼1965)가 말년에 쓴 ‘인간과 말’(도서출판 봄날의책)은 인간이 평생 동거하는 언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은 아름다운 명상록이다. 그가 관찰하는 언어는 언어학과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철학이나 전문용어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고대어의 문장, 구약성서의 명사와 문장구조, 그리고 시인들의 말들을 천천히 응시하고 음미하는 방식을 통해 언어의 심연에 가닿는다.
예컨대 그는 ‘언어의 선험성’을 설명하기 위해 기원전 6세기 그리스 사상가 헤라클레이토스의 시 ‘단장(斷章)’의 일부인 “불멸은 유한하며 유한한 것은 불멸한다./ 살아 있는 사람은 타인의 죽음을 살며,/ 죽은 사람은 타인의 삶을 죽는다”라는 구절을 인용한 뒤 이렇게 쓴다. “이 문장은 마치 사람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말하는 것만 같다. 그 시절 인간은 선험성이 언어와 대화하는 지점을 알고 있었고, 언어가 말하고 있을 때 언어를 급습했다. 이 문장에서 나오는 치유력은 궁극적으로 모든 내용을 초월한다.”(31쪽)
그의 논지에 따르면 언어는 인간에게 미리 주어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말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인간 속에 있었다. 이는 마치 죽음이 인간에게 앞서 주어진 것과 같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죽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과 함께 그에게 앞서 주어진 죽음을 죽는다는 것이다. 만약 죽음이 미리 주어지지 않았다면, 죽음은 개인을 기습하는 훨씬 더 격렬한 사건일 것이다.
그가 서두부터 끄집어낸 ‘선험성’은 전체적으로 이 책의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칸트의 ‘선험적’이라는 개념을 빌려온 것은 아니며 말 그대로 ‘경험과 감각을 통해 우리가 체험하기 전에 이미 우리 안에 주어져 있는 것’이다. 배수아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