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마구 풀어주는 형집행정지 ‘합법적 탈옥’ 아닌가

입력 2013-06-30 19:10

건설현장식당(함바) 비리 브로커 유상봉씨가 구속집행정지 기간 중 사기행각을 벌인 혐의로 추가 입건됐다. 최근 여대생을 청부살해해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은 기업 회장 부인이 형집행정지 제도를 악용, 호화 병실에서 장기간 생활했다는 ‘합법적 탈옥’ 논란이 거센 가운데 법원이 허가권을 갖고 있는 구속집행정지 제도마저 허점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돈과 권력이 있으면 죄를 짓고도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지고, 사법불신 풍조가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형집행정지와 구속집행정지는 기결수나 구속 기소된 피의자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다. 수술을 받아야 하거나 출산, 가족의 장례식 등 긴급하고 중대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엄격한 심사를 거쳐 집행정지가 이뤄진다. 기결수는 관할 검찰청 검사장이, 미결수는 재판을 진행 중인 판사가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종종 이 제도가 ‘합법적 탈옥’으로 악용됐던 게 사실이다. 한보그룹 정태수 전 회장은 징역 15년의 확정판결을 받고도 구속집행정지, 형집행정지를 반복하다 해외로 도피해 아직까지 잠적 중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 경환씨는 2010년 사기죄로 징역 5년형이 확정됐지만 형집행정지가 8차례나 허가돼 형기가 3년11개월이나 남아 있다. 지난해 사기 혐의로 구속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의 부인은 치료를 핑계로 구속집행정지를 허가받은 뒤 잠적해 재판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인사나 재벌 회장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처벌을 회피하다 사면, 석방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죄를 짓고 구속되면 갑자기 병자 행세를 하며 보석, 구속집행정지, 형집행정지, 가석방, 사면 등을 추진하는 게 당연한 절차가 됐다. 큰 돈을 들여 좋은 변호사를 쓰는 ‘범털’들은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고, 돈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전관 변호사를 쓰지 못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는 식의 그릇된 냉소주의가 팽배해진 것이다.

물론 법원과 검찰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검찰은 2010년부터 형집행정지심사위원회를 각 지검에 설치했고, 법원 역시 구속집행정지 등의 허가에 앞서 심사를 크게 강화했다. 국회에는 형집행정지 제도 개선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이 같은 노력은 무색해졌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다’는 결코 훼손돼서는 안 될 원칙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법원과 검찰은 더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집행정지 요건을 너무 엄격히 해 최소한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겠지만 법치주의의 기본을 흔들고, 사법불신 풍조를 유발하는 제도적 맹점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