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자동차 배기량 따라 부과 불합리… 지역건보료 기준 車값으로 바꿔라”
입력 2013-06-30 18:37
4000만원을 주고 갓 뽑은 신형 BMW 미니쿠퍼(1600㏄)와 150만원을 주고 구입한 낡은 그랜저(1999년식·2500㏄) 중 어떤 차량의 소유주가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낼까. 현행 법령에 따르면 소득과 생활수준 등 다른 조건이 모두 같을 경우 건보료를 더 많이 내는 쪽은 그랜저 소유주다. 건보료 부과 기준 중 자동차 등급이 자동차 가격과 상관없이 배기량에 따라 산정되기 때문이다. 위 사례에서 신형 외제차인 BMW는 3등급으로 59점을 받고, 14년 된 중고 국산차는 배기량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6등급으로 책정돼 74점을 받는다.
지역가입자 건보료 부과 기준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중고차를 구입하는 서민들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건보료 산정 시 자동차 기준을 기존 배기량이 아닌 실질적인 차량가액으로 변경하라고 보건복지부에 30일 권고했다.
대통령령인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은 소득·재산·생활수준 등의 항목을 여러 등급으로 세분화해 점수를 부여, 건보료를 산정토록 하고 있다. 자동차는 이 중 ‘재산’ 항목에 포함되며 배기량에 따라 1∼7등급으로 나뉜다. 배기량이 800㏄ 이하면 1등급, 1600㏄ 초과 2000㏄ 이하면 4등급, 2000㏄ 초과 2500㏄ 이하면 5등급, 3000㏄ 초과면 7등급인 식이다. 각 등급 안에서 자동차 연식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배기량이 클수록 건보료를 많이 낸다.
이 때문에 차량 가치가 거의 없는 낡은 중고차를 사도 배기량이 크면 건보료가 올라가는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건보료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실제로 지난해 110 정부 민원안내 콜센터에 접수된 보건복지 분야 민원을 살펴보면 2000만원짜리 1600㏄ 소형차를 보유하다 500만원짜리 3300㏄ 중고차로 바꾼 뒤 건보료가 오히려 2만원 늘었다는 등 건보료 산정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권익위 관계자는 “지난해 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콜센터에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 건보료 산정 기준에 문제가 많다고 판단했다”며 “노후 차량을 사는 서민들에게 경제적 부담이 가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권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9년 이상 된 자동차의 연식 기준을 더 세분화하는 방향으로 오는 10월 시행령 개정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